본당을 에워싼 회랑에는 라마끼얀 벽화가 총170면 8칸으로 나누어 그려져 있다. 라마끼얀벽화는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 구성이나 형식을 본 따 지은 총 116권의 방대한 서사시의 내용을 벽화로 그린 것으로, 서사시를 내용에 따라 8장(章)으로 나눈 것에 근거하여 그림도 8칸으로 나누어 그려져 있다.
이야기 줄거리 소개에 앞서 라마야나와 라마끼얀의 저작의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작품 모두 총 116권에 달하는 장편이고, 팔리, 싼쓰크릿어가 80%를 넘는 고어(古語)로 된 운문인 점이 연구의 한계를 갖게 한다. 따라서 라마야나는 C.Rajagopalachari의 영역본을, 라마끼얀은 라마 1세 본을 바탕으로 쁘램쎄리가 산문으로 지은 단행본을 채택하였다.

"라마끼얀 :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태국판."
이를 통해 언어만 다를 뿐 '같은 작품이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저작시기가 기원 전 2세기로 추정되는 작품과 1782년경의 또 한 작품이 어떠한 연관성을 갖을 것인가, 또한 힌두사상의 라마야나(라마이야기)와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라마끼얀(라마의 영광)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였다.
또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방대한 이야기를 한차례 축약한 것을 다시 요약하는 과정에서 줄거리만 남아 저작의도를 살펴보지 않고는 두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먼저 힌두교와 불교의 관계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불교는 힌두교의 브라만 사제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제의 중심적인 종교 관행이 신비적이고 수행적인 형태의 우빠니샤드 사상의 등장으로 제의사상이 약화되던 시기에 나타났다. 브라만 사제들에 의하여 지지 되고 있는 제의 중심의 종교를 거부하고 개혁하려 했던 불교의 중심사상은 인간 외적인 존재의 도움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적 경향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붓다 사후 불교가 하나의 독립되고 조직화된 종교로서 성장, 발전되어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상황적 요구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서 그 지역의 신앙 형태들을 불교에 적합하게 개조하는 방식으로 수용해 나갔다.
한편 이러한 종교적 상황을 거치면서 발전해 온 힌두사상은 고전시기 말엽(기원전 약 4세기)부터 중세(15세기까지)에 이르는 긴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종교 이념들을 균형 있게 종합 시키려는 종합화 운동을 맞게 된다. 라마야나, 마하바라따등의 서사시로부터 시작하여 뿌라나와 중세 박띠 문헌 등을 통하여 지속되었다.
라마야나로 대표되는 종합화는 세속적 사상과 탈속적 사상의 두 에토스간의 갈등을 제거하고 균형적으로 종합 시킴으로써 중도적인 성격의 대중적인 종교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종합사상이 추구하는 진정한 목표는 사상체계의 확립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삶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종합화 이후 구전되어 오던 라마승 이야기에 어려운 힌두 교리를 쉽고 재미있게 각색하여 라마가 비슈누신의 화신으로 신격화된 현재의 모습으로 정리된 것은 기원 후 2세기말일 것이라고 한다.

라마끼얀의 저작시기로 보여지는 1782년 랃따나꼬씬왕국의 1대왕 프라푿타엳화쭐라록 즉 라마1세(텅두엉) 즉위 당시 시대적 상황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기였다.
아유타야의 멸망을 겪은 후 텅두엉은 톤부리에 나라를 세운 딱씬왕의 가장 신뢰하는 장수의 한 사람으로 잃어버렸던 아유타야왕국의 땅을 탈환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이후 딱씬왕이 재위 15년 만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처형을 당하자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선왕의 처형에 직간접적으로 연루 되어 있는 관계로 혼란해진 민심의 수습이 시급하였다. 아유타야 시대 말기와 톤부리 시대의 혼란기를 직접 겪은 라마1세는 불교를 국가 안정과 번영의 한 기본적인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등위 후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이 불교의 개혁이었다. 국가의 도덕적 기강과 질서의 회복에 우선적인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혼란에 빠져있던 승가(僧家)를 정비하여 승가의 권위를 회복 시켰다.
전통적인 불교 후원자 및 통제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었던 그는 불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새로운 타이왕국을 건설하는 탐마라차로서 전통적인 왕권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는 종래의 역사 해석의 관점이었던 아유타야 전통의 복원이 아니라 아유타야 전통의 개혁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가 새로운 왕조의 창건자로서 개혁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라마끼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라마끼얀은 라마야나와 달리 제1장에서 국가탄생의 유래를 불교의 우주론인 삼계론(三界論)에 바탕을 두고 건국신화의 형태로 저작하였다. 이제까지 삼계(三界)의 존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지옥세계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세계 그리고 신의 세계를 포함하는 색계(色界)와 인식의 세계인 무색계(無色界)를 거쳐 니르바나의 순서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라마끼얀에서는 천상의 세계에서 시조(始祖)가 탄생하여 인간계로 내려와 나라를 건국하는 구성을 통해 의도적으로 우주의 존재론적 결정의 축에 있는 인간세계를 강조하였다고 보여진다. 뿐만 아니라 업(業)사상 즉, 일상행위에 따라 내세에서의 존재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불교론적 인식이다. 이를 근거로 한 저작으로 라마 1세는 국민들이 선업(善業)을 축적할 수 있는 사회적 틀을 제공하는 왕권을 정당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추 또한 건국신화를 갖고 있는 우리의 동아시아적 정서에 따른 판단이다. 왜냐하면 태국은 신화라는 단어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불교가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도움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 또는 자력신앙으로 표현될 수 있는 형태로 출발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더구나 초기 아함경을 경전으로 하는 소승불교국에서 신화를 인정한다는 것이 도리어 아이러니가 아니었을까.

라마야나와 라마끼얀에서 '같음'속에 '다름'과 '다름'속에 '같음'을 동시에 본다.
두 작품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하나의 사건, 씨다가 라바나(톳싸깐)에게 납치 당했다가 돌아와서 치르는 전통 순결의식 루이파이를 통해서 두 종교의 차이를 알아보자.
씨다가 자신의 정결을 증명하기 위해 숯불 위를 걷는 의식 루이파이를 치르는 과정에서 라마야나에서는 불의 신 아그니의 도움을 받고 첫 번째 의식을 무사히 치르지만 아그니신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두 번째에는 의식을 치르다 죽는다. 나와 신의 공존을 보여주는 반면, 라마끼얀은 자신이 정결하므로 무사히 의식을 치르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인간이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인간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무신론과 철저한 자기수행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또한 두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여러 등장인물 들의 환생과 하누만(원숭이), 터라피(물소), 치우하(혀) 등을 통하여 인도 문화의 일원론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는 "같음"을 본다. 즉,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서 신성(神性)을 인지하여 우주를 이해하는 그들의 통합적인 시각이다.
  범신론이라 하기도 하는 근원적 실재와 우주, 그리고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는 관점이다.
이로서 두 작품은 이야기의 구성(plot)과 형태만 같을 뿐 저작의도가 달랐던 만큼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연구결과 라마야나로 통칭되는 라마이야기는 인도에서도 싼쓰크릿어판, 자이나교판, 뱅갈판, 티벳어판 이외에 다수가 있고,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 필리핀, 버마,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는 물론 태국, 중국의 운남성에도 있으며 각각의 나라에 여러 종류가 있었다. 태국에는 톤부리의 왕 딱씬에 의해 저작되다 중단된 라마끼얀을 비롯하여 라마 1세본, 라마 2세본, 라마 3세본과 라마 6세 때 라마야나를 영역한 Thai Ramayana가 있으며, 동북부의 라마자타카와 란나타이의 라마이야기등이 있다. 따라서 라마에 관한 이야기는 인도인 사이에 구전되어오던 이야기에 각 종족의 시대적 상황과 저자의 저작의도에 따라 각색되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 수년간 태국 전역의 문화유물유적과 사원을 돌아보면서 태국의 문화를 알기 위해서 라마야나와 라마끼얀에 대한 연구는 필수 과제라 생각했다.
태국에서도 라마끼얀의 연구는 미흡한 편이다. 더구나 저작의도를 통한 태국인의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는 연구는 전무하여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태국인들은 라마끼얀을 무신론을 근거로 범신론을 수용하는 불교의 우주론적 세계관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라마끼얀 줄거리


제1장 : 최초의 왕국과 왕의 출현
수미산(짝끄라완) 꼭대기에 살고있던 히란이라는 나찰(히란약)이 이쑤언 신의 은총으로 얻은 법력을 이용하여 천지를 진동시키며 천계(天界), 인간계(人間界), 그리고 지하계(地下界)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이쑤언 신은 히란약의 횡포로 불안에 떨고있는 삼 세계의 주인들을 구하기 위해 프라나라이(나라야나=비슈누신)를 파견하였다. 즉시 땅의 세계로 내려와 멧돼지로 변신하여 히란약을 살해하고 지구를 평정한 나라이는 낙(용 또는 뱀)을 타고 유해의 바다에 이르러 베다 찬가를 불렀다. 그랬더니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났고, 꽃 안에서 귀골의 동자가 나타났다. 나라이는 그 동자를 천에 싸서 이쑤언 신에게 헌상하였다. 이쑤언 신은 그 동자에게 아노마딴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최초의 아요타야국의 왕으로 명하였다.
지상으로 내려가 왕국을 건설하라는 이쑤언 신의 명을 받은 프라나라이는 비슈누신의 권유로 네 명의 행자가 고행을 하고있는 타와라와디숲에 도시를 건설하고, 아짜하카위, 육아카라, 타하, 야카의 행자 네 사람 이름의 첫 글자를 딴 아·유·타·야와 숲의 이름을 합쳐 아유타야타와라와디라 지었다. 아유타야 왕에 즉위한 아노마딴은 프라나라이의 화신으로 여겨져, 악마를 퇴치하기 위한 법력과 네 가지 무기를 받았다.
이후의 이야기는 아노마딴의 아들 아차반의 탄생과 왕위계승, 이 이야기의 중요 등장인물의 탄생과 환생 그리고 소 왕국들의 설립과정이 상세하고 장황하게 묘사되어 있다.


제2장 : 프라람의 탄생
아요타야 왕국의 톳싸롯왕이 신에게 자식을 구하는 제의를 거행한다. 네 덩어리의 밥을 만들어 신에게 바쳤는데, 그 향기가 온 천지를 진동하여, 롱까국에 살고 있던 낭몬토가 그 냄새를 맡고 깍까나쑨신을 시켜 반 덩어리를 훔쳐오게 한다. 남은 세 덩어리 반을 부인 세 명이 나누어 먹은 후 정비인 낭까오쑤리야는 프라람을, 낭까이께씨는 프라프롯을 낭싸뭇테위는 프라락과 프라쌋따룯 등 네 명의 아들을 낳았다.
한편 피펙은 낭몬토가 훔쳐온 밥을 먹고 낳은 딸이 불행을 가져올 징조라며 물 속에다 버리라고 예언하자 아버지인 톳싸깐은 딸을 물에 띄워 버린다. 수도승 차녹과 나이쏨이 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연꽃 속에 유골 넣는 용기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주워다 뚜껑을 열었더니 작은아기가 있었다. 아기는 미천한 출신이 아닌 왕가의 후손으로 여겨졌다. 나이쏨이 데려다 정성껏 키웠는데 아기가 왕가의 후손일 경우에 후일이 복잡해질 것을 우려한 수도승 차녹은 부모를 찾아주기로 하였다. 아기를 전과 같이 용기에 담아 싸이나무 아래 구덩이를 파고 나무판 위에 용기를 놓은 후 흰색의 왕실용 우산을 씌워놓고 부모가 찾아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차녹이 데려다 "씨다"라 이름짓고 미티라 왕국으로 데려가 양육하였는데, 용모가 빼어났다. 결혼할 나이가 되자 마하타누모리라는 이쑤언 신의 활을 쏠 수 있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는 방을 내걸었고, 그 활쏘기 시합에서 프라람이 승리하였다. 차녹은 톳싸롯 왕을 초청하여 프라람과 씨다의 결혼식을 성대히 치루어 주었고 프라람 일행은 아요타야로 돌아갔다.


제2장 : 프라람의 탄생
아요타야 왕국의 톳싸롯왕이 신에게 자식을 구하는 제의를 거행한다. 네 덩어리의 밥을 만들어 신에게 바쳤는데, 그 향기가 온 천지를 진동하여, 롱까국에 살고 있던 낭몬토가 그 냄새를 맡고 깍까나쑨신을 시켜 반 덩어리를 훔쳐오게 한다. 남은 세 덩어리 반을 부인 세 명이 나누어 먹은 후 정비인 낭까오쑤리야는 프라람을, 낭까이께씨는 프라프롯을 낭싸뭇테위는 프라락과 프라쌋따룯 등 네 명의 아들을 낳았다.
한편 피펙은 낭몬토가 훔쳐온 밥을 먹고 낳은 딸이 불행을 가져올 징조라며 물 속에다 버리라고 예언하자 아버지인 톳싸깐은 딸을 물에 띄워 버린다. 수도승 차녹과 나이쏨이 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연꽃 속에 유골 넣는 용기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주워다 뚜껑을 열었더니 작은아기가 있었다. 아기는 미천한 출신이 아닌 왕가의 후손으로 여겨졌다. 나이쏨이 데려다 정성껏 키웠는데 아기가 왕가의 후손일 경우에 후일이 복잡해질 것을 우려한 수도승 차녹은 부모를 찾아주기로 하였다. 아기를 전과 같이 용기에 담아 싸이나무 아래 구덩이를 파고 나무판 위에 용기를 놓은 후 흰색의 왕실용 우산을 씌워놓고 부모가 찾아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차녹이 데려다 "씨다"라 이름짓고 미티라 왕국으로 데려가 양육하였는데, 용모가 빼어났다. 결혼할 나이가 되자 마하타누모리라는 이쑤언 신의 활을 쏠 수 있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는 방을 내걸었고, 그 활쏘기 시합에서 프라람이 승리하였다. 차녹은 톳싸롯 왕을 초청하여 프라람과 씨다의 결혼식을 성대히 치루어 주었고 프라람 일행은 아요타야로 돌아갔다.


제4장 : 씨다를 사랑하게된 톳싸깐
롱까국의 치우하(혀, 설舌)는 톳싸깐 왕이 국외 순시를 떠나자 7일 동안 밤낮으로 자지 않고 나라를 지키다 마지막 7일째의 밤, 밀려오는 졸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라가 염려되어 잘 수 없었던 치우하는 혀를 길게 내밀어 왕국을 통째로 덮은 뒤에 깊은 잠에 빠졌다. 7일만에 롱까로 돌아온 톳싸깐은 암흑에 쌓인 도시가 적의 소행으로 파괴된 것으로 착각하고 잠에 빠져있는 치우하가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격분하여 짝이라는 톱니가 달린 원형의 무기를 던져 죽였다.
미안한 마음의 톳싸깐은 억울한 남편의 죽음으로 슬픔에 쌓인 낭쌈마낙카에게 도시를 구경 다니며 새 남편을 만나보라고 권하였다. 코타와리 강가에서 때마침 그 곳에 당도한 프라람과 씨다, 프라락을 우연히 만난 낭쌈마낙카는 프라람을 보고 반해 인간으로 변신하여 프라람을 유혹하였으나 거절당한다. 화가나 씨다에게 달려들어 때리려 하자 프라락이 낭쌈마낙카의 손과 발을 잘라 버렸다. 아픔과 분을 참지 못한 그녀가 오빠 프라야컨에게 고해 바치자 프라야컨과 그의 부하 뜨리씨안은 차례로 프라람을 죽이러 갔다가 도리어 죽임을 당했다. 그녀는 롱까의 톳싸깐을 찾아가 씨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면서 같이 가보자고 톳싸깐을 충동질했다. 씨다를 보고 반해버린 톳싸깐은 마릿에게 사슴으로 변하여 씨다를 유혹하도록 하였다.
예쁜 사슴을 본 씨다가 프라람에게 사슴을 잡아 달라고 하자 동생에게 아내를 부탁하고 사슴을 잡으러 숲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타난 사슴이 프라람의 목소리로 프라락을 유인해간 후, 이상하게 여긴 씨다가 프라락을 돕기 위해 집밖으로 나왔다. 이때를 틈타 씨다를 유괴하여 롱까국으로 가던 톳싸깐을 싸다유가 공격하였고 씨다는 반지를 떨어뜨려 자신의 행방을 알린다. 사슴을 잡으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온 프라람은 씨다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때마침 씨다의 반지를 가지고 달려온 싸다유를 통해 그간의 경위를 듣는다. 씨다를 구하는데 도움을 청하기 위하여 형제는 숲으로 하누만과 쑤크립을 찾아간다.


제5장 : 씨다를 찾아서
프라람을 만난 하누만은 쑤크립을 데리고 와 팔리에게 추방당한 경위를 들려준다. 프라람은 쑤크립이 팔리를 쳐부수는데 도움을 주고, 쑤크립은 씨다 찾는 일을 돕기로 약속하였다. 프라람은 활을 쏴 팔리를 제거하고 킫킨으로 들어가 나라를 세우고 쑤크립에게 통치하도록 한다. 칸타맛 산으로 가는 도중 금 공작은 씨다의 소식을 전해 주었고 원숭이로부터는 씨다의 싸바이( 어깨에 두르는 띠)를 건네 받았다.
하누만이 군대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롱까로 갔다.


제6장 : 하누만의 활약

하누만이 롱까에 당도하여 모든 성을 돌아다녔으나 씨다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톳싸깐의 정원에서 씨다를 발견하였으나 프라람이 보낸 것을 알리 없는 씨다 앞에 선뜻 나설 수가 없어 작은 원숭이로 변하여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톳싸깐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씨다를 괴롭히기 위해 낭약(여자귀신)을 시켜 씨다를 비난하게 하였다. 비난을 들은 씨다가 목을 매어 죽으려하자 하누만은 프라람의 반지를 내어주며 프라람이 찾으러 온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 후 정원을 부수고 화가 나서 달려온 톳싸깐의 아들 싸핫꾸만을 죽였다. 톳싸깐이 길길이 날뛰며 싸우려하자 일부러 져주어 잡혔다. 화가 난 톳싸깐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하누만을 죽이려 했으나 아무리 해도 죽일 수가 없었다. 하누만이 자기를 태워 죽여 달라고 청하니, 톳싸깐은 죽일 요량으로 하누만의 몸에 불을 붙였고 꼬리에 불을 달은 하누만은 롱까국 사방을 뛰어 다니며 불을 내 롱까국을 태워 없애 버렸다.


제7장 : 프라람과 톳싸깐의 전쟁


하누만으로부터 씨다의 소식을 들은 프라람은 칸타끼라산의 바닷가에 진을 쳤다. 한편 톳싸깐은 흉몽을 꾼다. 불안한 톳싸깐은 예언자 피펙에게 해몽을 의뢰했는데, 흉몽이라며 씨다를 돌려보내 주어야 한다고 말하자 톳싸깐은 피펙이 프라람과 한편이라며 쫓아냈다. 혼자가 된 피펙은 프라람의 휘하로 들어가 프라람의 군대를 교란하려던 톳싸깐의 온갖 술수를 간파하여 프라람에게 알려 주었다.
그 동안 씨다를 돌려보내 주라는 주위의 권유를 듣지 않은 톳사깐은 전쟁을 하게 된다. 아들 인트라칟이 7년 동안 아키(불의 신)에게 드린 기도 끝에 삼신으로부터 받은 세 개의 활을 가지고 프라락과 네 번의 싸움을 벌이다 프라락의 마법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아들의 죽음에 톳싸깐이 직접 전쟁에 나서자 열 명의 아들이 따라 나선다. 네 차례에 걸쳐 전쟁을 하다가 마침내 죽임을 당한다.
( 이 전쟁 장면이 가장 재미있고 널리 알려져 있어 때로는 이야기 전체가 영웅신화로 알려질 정도로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가면극에서 변사의 입담에 따라 여러 가지 이야기가 가감되기도 하는 실감나는 전쟁의 묘사가 너무 길어 자세히 소개하지 못함을 애석하게 생각한다.)피펙은 씨다가 프라람에게 돌아가도록 도와주었고, 씨다는 적군에 잡혀갔었던 자신의 순결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명하기 위하여 전통적으로
 







순결을 증명하는 의식인 루이파이(불에 달군 숯 위를 맨발로 걷는 시험)를 행한다. 프라람은 피펙을 롱까왕으로 추대하고 씨다와 함께 아요타야 왕국으로 돌아갔다. 아요타야 왕국으로 돌아온 프라람은 하누만의 공적을 기려 아요타야왕국을 통치하도록 하였으나 하누만이 하루만에 나라를 반환하자 "높부리"라는 나라를 만들어 통치하도록 하고, 그 밖의 장수들에게 높은 지위의 포상을 하였다.



제8장 : 아요타야의 평화
톳싸깐이 죽은 후 그의 아내 낭몬토는 임신 일 개월의 몸으로 피펙의 아내가 되었다. 낭몬토의 아들 파이나쑤리웡이 이 사실을 알게되어 피펙을 증오하여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프라람은 동생 프라프룻과 프라쌋따룯을 보내 피펙을 도와준다.
한편 톳사깐의 유모인 마녀 삐쌋아둔이 복수를 하기 위해 씨다를 찾아간다. 이십개의 얼굴을 가진 톳싸깐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나 그려 보여 주라고 유혹한다. 톳싸깐의 모습을 그리자 때마침 프라람이 숲을 순시하고 돌아온 것을 안 삐쌋아둔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씨다가 아무리 그림을 없애려 해도 찢어지지도 불에 타지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침대 밑에 숨겨 두었으나 프라람이 보게 되었다. 씨다를 의심하게 된 프라람은 씨다를 죽이라고 프라락에게 명하였으나 프라락은 형수가 숲으로 도망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씨다는 숲 속에서 도인의 도움을 받고 지내면서 아들을 낳아 프라몽꿋이라 이름 짓고, 도인은 프라몽꿋의 안전을 위해 똑같이 생긴 아들 한 명을 더 만들어 프라롭이라 불렀다. 두 아이는 도인으로부터 배운 여러 학문과 활 솜씨가 탁월하여 그 명성을 아요타야 왕국에까지 떨치게 되었다.
프라람이 말 축제에서 "누구든지 이 말을 만나는 사람은 말에게 경의를 표하라. 복종하지 않는 자는 반역에 처한다."는 글귀를 말의 목에 달아 숲 속에 놓아주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달려온 말을 타고 놀던 두 아들은 명령을 어긴 죄로 프라람의 군대에 잡혀간다. 프라람은 진지에 도착한 두 명의 사내아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된다. 그들을 데리고 씨다를 찾아가 왕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였으나 씨다는 거절하였다. 프라람은 하누만을 시켜 프라람이 죽어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니 참석해 달라는 계책을 꾸몄다. 장례식에 참석하러 왕국으로 돌아 온 씨다는 그 말이 거짓임을 알고 지하세계로 들어가 용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프라람은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 1년을 지내면서 많은 도깨비들을 평정하였다. 이쑤언 신은 프라람과 씨다가 아직도 헤어져 있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을 불러 천계에서 다시 결혼식을 올리게 하여 행복하게 살게 해주었다. 그 후 아요타야 왕국은 평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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