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밖으로 나오니 훅 느껴지는 밤의 열기가 줄지어 늘어선 붉은 가로등 불빛으로 갑갑증을 더 한다. 태국의 6월은 여름이 한창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더위가, 대만, 홍콩을 거쳐 7시간이나 걸려서 너무 멀리 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등뒤로 닫힌 문은 이제 그냥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단순한 문이 아니었다. 그나마 서울에 사는 덕에 일주일만에 신원 조회를 마치고 여권 신청을 했는데, 담당자에게 리젝트 당했었다. 단지 잘 알지 못하는 대학이라는 이유였다. 쉽게 돌아갈 일도 아니었으나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알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와 자주자주 폐쇄공포증 같은 증세에 시달리게 했다.

그 어려운 시절을 지켜준 에메랄드사원에 갔다.
그때도 왕실사원에서 반바지와 슬리퍼는 금지시키고 있었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해 반바지 위에 둘러 입을 수 있는 스커트를 준비해 놓고 한층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태국을 알다 보면 특별히 하지 말라는 것은 없지만 무언에 지켜지는 것들이 있다. 외국인들에게 그런 것이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표현일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조금 전 태국 가족을 찾았다는 고마움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일 배(拜)를 하고 일어서다 순간 당황했다. 주위의 시선보다 바닥이 아마득히 멀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태국 사람들의 절은 다리를 한옆으로 모으고 상체를 엎드려 바닥에 손바닥을 대었다 합장하는 동작을 세 번 반복하는데 흥분한 나머지 우리 식으로 벌떡 일어섰으니... 내친 김에 삼배를 하고 귓가까지 붉어진 얼굴을 묻은 채 한참을 있었다.

에메랄드 사원은 현 랃따나꼬씬 왕조의 왕실사원으로 태국을 대표하는 사원이다. 왕궁 내에 왕실을 수호하는 불교사원을 건설하는 전통은 쑤코타이시대(1238-1438년) 로부터 전해오고 있다.
후에 라마1세가 된 텅두엉은 동생인 분마와 톤부리 왕조의 딱씬왕을 도와 미얀마에게 잃었던 영토를 회복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왕으로부터 총사령관 또는 성주에 해당하는 짜오프라야짝끄리라는 직위를 받는다. 짜오프라야짝끄리는 크메르와 라오스까지 영토를 넓히게 되자 위양짠으로부터 에메랄드불(佛)을 톤부리로 모셔온다. 그 후 딱씬왕의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쿠데타가 일어나 처형당하자 짜오프라야짝끄리는 짜오프라야강 동쪽, 꾸룽랃따나꼬씬 또는 꾸룽텝이라는 지역에 수도를 정하고, 역대로 수도의 이름을 왕조의 이름으로 삼아왔던 쑤코타이의 쑤코타이왕조, 아유타야의 아유타야왕조, 톤부리의 톤부리왕조의 전통을 따라 랃따나꼬씬(인트라의 보석)왕조라 하고 수도의 공식 명칭을 또 하나의 이름인 구룽탭마하나컨(거대한 신의 도시)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의 아유타야 시대로부터 전해오던 이름인 "꺽"나무가 많은 마을, 즉 방꺽(꺽나무 촌)이 외국인들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수도의 이름이 영어 Bangkok으로 표기되면서 사실상 공식 명칭 "꾸룽탭마하나컨"보다 방콕이 일반화되었다. 따라서 "랃따나꼬씬왕조"도 "방콕왕조"로 바뀌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 사원은 석연치 않은 딱씬왕의 죽음과 왕권의 확립을 위해, 아유타야 시대의 영광과 번영을 재건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아유타야 왕궁을 본 따 2년에 걸쳐 지었다한다. 선대왕조 아유타야의 전화(戰禍)에 의한 몰락과 톤부리왕조 딱씬왕의 축출에 따른 민심을 수습하고, 불법에 따라 통치하는 탐마라차로서의 왕권 확립을 위해 노력한 흔적을 사원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보솟( 본당)과 에메랄드불(佛), 세 기(基)의 대 탑들과 본당 둘레의 회랑에 그려져 있는 라마끼얀 벽화는 1782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랃따나꼬씬왕조를 대표할 만 하다 할 수 있다.
본당 안으로 들어서면 내벽에 불교의 우주관과 항마성도(降魔成道)가 그려져 있고, 랃따나꼬씬시대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되는 목각 옥좌에 가부좌를 한 에메랄드불(佛)이 높다랗게 모셔져있다. 에메랄드불(佛)은 높이 66cm, 폭 48.3cm 크기의 녹색 벽옥으로 만들어져있다. 이 불상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에 대해 정확한 기록은 없고 불상의 형태에 따른 추정만 분분할 따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불상은 기원 전 현재의 북인도 파토나에서 만들어져 그 300년 후 그곳에서 일어난 내전을 피해 불교도들에 의해 실론(스리랑카)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457년 인도의 파간왕이 불상을 돌려 받아 돌아오는 길에 배가 난파되어 불상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바다 속 불상은 파도에 밀려 도저히 예상하기 힘든 방향인 안다만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불가사의 한 일이라 여겨 아유타야를 거쳐 치앙라이로 옮겨갔고 도난 방지를 위해 석고를 씌워 불 사리탑에 숨겨 두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인 1434년, 불 사리탑에 벼락이 떨어져 석고가 벗겨지면서 에메랄드 불상이 나왔다. 이때부터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불상으로 사람들에게 숭배되기 시작하였다. 그 때 치앙마이 왕이 불상을 치앙마이로 옮기려고 세 번을 시도하였는데 그 때마다 불상을 등에 실은 코끼리가 치앙마이 쪽으로는 움직이려 하지 않고 람빵으로 향했다. 치앙마이 왕은 불상의 의지라 여겨 람빵사원에 32년간 모셨다 한다. 그 후 치앙마이의 제디루엉이라는 불 사리탑에 안치되었다가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을 거쳐 라오스가 미얀마를 정복하여 수도를 위양짠으로 옮기면서 불상도 옮겨갔다. 이후 1778년 라오스를 정복한 톤부리 왕조의 딱씬왕 (이때 실제로는 짜오프라야짝끄리職의 텅두엉이 모셔옴)이 수도 톤부리의 왓아룬(새벽사원)으로 모셔왔다. 1784년 왕실사원이 완공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모셔진 아름다운 에메랄드 불상은 태국 국민들에게 본존불로서 숭배되고 있다.
에메랄드 사원에서 발간된 "프라깨우모라꼳"에 에메랄드부처님의 이동사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불력 약1945 ∼ 1967년 ( 1402 ∼ 1424년 ) 람빵에 22년간
2011년 ( 1468년 ) 치앙마이 84년
2094년 ( 1551년 ) 루엉프라방 12년
2107년 ( 1564년 ) 위양짠 215년
2321년 ( 1778년 ) 톤부리 4년
2325년 ( 1782년 ) 방콕
2327년 ( 1784년 ) 월요일, 음력 4월 16일, 용(龍)해.
에메랄드 사원( 왓 프라씨랃따나쌋싸다람 )에 안치되었다.
전설과 사원의 년도가 조금은 다르나 두 가지의 기록이 거의 일치하는 것만을 확인하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였다. 에메랄드 사원 측도 제작 연대의 다각적인 추정과 함께, 치앙라이에서 불 사리탑이 벼락에 의해 파괴되면서 발견된 시점부터 기록하고 있었다.

이 에메랄드불 앞쪽으로 1841년 라마 3세가 라마 1세의 초기 치적(治績)과 라마 2세의 중기 치적(治績)을 기리고자 만든 아름다운 보관불이 양편에 서 있다. 청동제로 만들어 금을 입히고 보석으로 장식한 불상들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의 모습[손바닥이 보이게 두 손을 쫙 편 상태]을 취하고 있다.


о. 크르엉쏭 ( 법의) 갈아 입히는 행사일

<에메랄드불의
3계절 변화>

라마 1세 때 에메랄드불(佛)의 법의는 여름과 우기, 두 벌이었던 것을 라마 3세 때 건기의 옷을 한 벌 더 마련하였고, 현재까지 이 법의를 갈아 입히는 행사는 일년에 세 번 왕이 직접 행한다.
여름 : 음력 4월 16일
우기 : 음력 8월 16일
건기 : 음력 12월 16일
역대 왕들은 이 행사에 참여하는 본당 내의 왕자들이나, 정부 고관들에게만 성수를 뿌려 주었으나,
현왕(現王)인 푸미볼왕은 전통을 깨고 본당 밖의 참배객들에게도 성수를 뿌려주며 축복을 해 주고있어 국민에게 친근한 왕으로 칭송 받고있다.
경내 좌측에 나란히 세 기(基)의 화려하고 거대한 각기 다른 모양의 탑들을 볼 수 있다.

쩨디( )는 황금색의 종 모양에 상층부는 점점 작아지면서 뾰족하게 쌓아 올려 맨 위는 작은 공 모양으로 되어 있다. 스리랑카식으로 불 사리탑을 뜻하나 후에는 왕 또는 승려, 귀족의 유골을 모시기도 하였다.
몬돕()은 장방형의 건물의 통칭으로 경전을 모셔두는 건물을 뜻한다.
쑤코타이에서는 이례적으로 대형 불상을 모신 형태도 볼 수 있다. 또한 랃따나꼬씬시대의 몬돕에서는 장방형의 건물 지붕 위를 피라밋 형태로 화려하게 꾸미고 길게 뻗은 첨탑의 꼭대기는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독창적인 몬돕의 형태로 지어져 있다.
쁘랑( )은 크메르 양식으로 크메르의 앙코르왓이 기본 형태이다. 태국에서는 시대별로 약간씩 다른 형태를 보이나 아유타야시대에 건설한 톤부리의 왓아룬을 대표적인 형태로 볼 수 있다. 이 역시 랃따나꼬씬식의 쁘랑은 건축물의 지붕 위에 쁘랑을 건설한 독특한 형태를 보여준다.
에메랄드 사원의 본당과 세 기의 대 탑들이 화려하게 어우러져 랃따나꼬씬왕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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