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산업구조


개요

□ 태국은 1980년대 이전까지 농업중심의 산업구조였으나 이후 공업화가 급속히 진전되었음.

- 1961년대의 경제사회개발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태국경제는 빠르게 성장하여 1960년대에 평균 8%, 1970년대에 평균 7.5%의 성장률을 달성하였음.

- 1980년대에 약 10%에 달하는 고도성장을 달성하면서 농림수산업의 비중이 점차 축소되는 반면, 제조업, 서비스업의 비중이 확대되는 등 산업구조가 점진적으로 변화해 왔음.

ㅇ 태국은 전통적인 농업국가로서 GDP에서 농림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50년대 47% 이상을 차지하였으나, 점차 그 비중이 감소하여 1966년 36.6%에서, 1986년 16.3%로 감소하였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는 10% 내외를 차지하고 있음.
ㅇ 제조업은 태국경제의 근대화 및 공업화정책의 추진으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왔음. 특히 1985년의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고 현상을 계기로 일본 기업들이 태국으로 생산거점을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GDP대비 제조업 비중은 1986년에는 23.6%, 1995년 29.2%로 확대되었고 2001년에는 35.5%에 달함.
ㅇ 서비스업 또한 상업 및 금융부문을 중심으로 급성장하여, 1997년 외환 위기로 금융산업이 위축되기 전에는 거의 약 60%에 이를 정도로 확대됨.

<표 1> 태국 산업구조의 변화 (단위 %)

자료 : NESDB

□ 태국의 산업별 성장률을 보면 1990년대 중반까지 태국의 산업성장은 제조업과 건설, 부동산, 통신 부문의 성장이 주도하였으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전반에 거품이 걷히면서 건설, 부동산부문의 침체가 심각하게 진행되었음.

<그림 2> 최근 태국의 주요 산업별 성장률 추이 (단위 : %)

자료 : Bank of Thailand

주요 산업별 현황

의류산업

□ 태국의 의류산업은 1960년 태국정부가 투자 장려업종으로 지정한 이후 주요 산업으로 발전하였음.

<표 2> 의류제품에 대한 태국의 수입관세 (단위 : %)

자료 : Ministry of Industry

- 섬유제품에 관한 수입관세는 1970~80년대를 거쳐 산업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고관세가 유지되었으나 중급?저급제품의 관세는 60~80%, 고급제품은 30% 선을 유지하였음.

- 의류에 대한 관세는 1978년 80~100%에서 2001년 30%까지 하락하였고 실크 및 재료 등에 부과하였던 수입관세도 1984년 이후 낮은 관세율을 유지하고 있음.

□ 최근 태국의 섬유제품 수출 현황과 추이를 보면 미국은 태국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2000년과 2001년에 2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여 전체 수출의 약 38%를 차지하였음.

- 2001년 미국경제의 침체로 수출금액은 다소 감소하였으나 기타 시장도 마찬가지로 부진하여 비중은 오히려 증가함.
ㅇ 미국에 이어 일본은 2000년과 2001년에 각각 3억 6,840만 달러, 3억 3,430만 달러를 수출하여 전체 수출중 약 6% 이상을 기록하고 있음.

- 상위 20개 수출국중 영국, 독일 등 EU 회원국이 6개국으로 전체 수출금액으로 2001년에 약 8억 달러를 수출하였으나 전년보다 감소하여 태국의 섬유수출은 물론 전체수출 실적에 EU에 대한 수출부진이 영향을 줌.

- 한편 홍콩을 제외한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13개국으로의 수출실적은 2001년 약 7억 달러로 EU보다 다소 부진하였으나 2002년 AFTA 출범, 동아시아 경제협력 확대로 태국의 對동아시아 수출은 증가할 전망임.

- 태국의 섬유제품 수출은 1994년과 1995년에 5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한 이후 2001년까지 줄곧 50억 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는데 최대 수출국인 중국과 남미 등과의 경쟁에서 태국산 섬유수출은 다소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점차 섬유산업의 사향화가 예상됨.

<표 3> 태국의 국별 섬유수출 (2000~2001년) 현황 (단위: 백만 달러)

자료 : Bank of Thailand

<표 4> 태국의 섬유제품 수출추이 (단위 :백만 달러)

자료 : Thailand Textile Institute


자동차산업

□ 태국의 자동차산업도 섬유산업과 함께 1960년의 투자장려법에 수입대체 공업화가 시작되었음. 1962년 투자장려법 개정에는 BOI의 투자장려혜택의 부여와 CKD(Complete Knock Down : 완성차의 부품을 완전히 분해하여 수출, 수입하는 방식) 부품을 수입하여 태국내에서 자동차를 조립하는 경우 완성차수입에 비해 수입관세가 50%을 초과하기 때문에 1969년에 투자장려가 중단되기 전까지 11개 공장이 조업을 하였음.

- 태국정부는 1969년 ‘자동차산업개발위원회’를 발족시켜 공업부의 경제관료가 중심이 되어 자동차산업 육성방침을 연구함.

- 1960년대에 태국계 자동차공장이 가동하였으나 실제는 CKD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하는 수준이었음.

□ 결국 태국정부는 자국산 자동차 생산을 목표로 자동차산업 육성책을 준비함.

- 자동차산업은 부품 등 관련산업 대부분이 기간산업으로 공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연관성이 높아 자동차산업개발위원회에서는 자동차산업정책을 검토하여 현지부품조달의무, 규모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각종 조치가 1970~80년대에 실시되었음.

- 그러나 이러한 조치의 결정은 순수한 경제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각 업계 및 단체의 압력에 의해 좌우되어,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하였음.

□ 공업부는 1971년 태국공업협회 자동차부회의 협력을 통해 국내자동차산업의 보호정책을 처음으로 발표한바 있는데 조립공장에 대해서는 조립 모델수를 제한하여 1973년까지 국산부품을 25% 이상 사용하는 의무, 신공장의 설럽조건을 일일 30대 이상, 투자액 2,000만 바트 이상으로 신규투자를 제한하였음.

- 그러나 1971년 11월 타넘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로 1971년의 정책은 폐지되었고 25%의 국산부품조달의무는 1975년부터 적용되었음.

- 모델수와 생산량을 제한하지 않은 정책이 1972년에 발표되었는데 이는 1971년의 정책에 물만을 가진 신규진입기업이 적극적인 로비를 통해 정책변경을 이끌어내었음.

- 1972년 정책변경에 의해 자동차조립의 신설 및 확장이 잇따르게 되었고 1975년 이전에 14개 조립기업이 조업을 하였고 그외에 3개사 조업예정에, 1개사가 조립공장의 건설을 추진하였음.

- 국산부품조달의무가 부여한 한편 모델수 제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품종 소량의 부품을 현지 조달하는 필요성이 발생하여 일본계 조립기업은 자국의 부품계열기업의 태국 진출을 모색함.

□ 1970년대 중반 무역수지 적자가 악화되자 상무부는 1978년 1월 승용차의 완성차 수입을 금지하였고 재무부도 완성차의 CKD 부품의 수입관세를 인상하였음.

- 완성차 수입의 금지조치는 이미 조업이 궤도에 올라있는 일본계 기업과 태국계 부품기업이 공통적으로 기대하였던 보호주의 정책으로 이로 인해 생산대수가 적은 유럽 및 미국계 조립기업은 어려운 상황에 처함.

- 한편 국산부품조달정책에 관해서는 일본계 기업과 태국계 기업간에 의견대립이 발생하였는데 태국공업협회 자동차부품회에서는 일본계 기업이 지배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여 부품국산화의 추진에의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주장함.

- 따라서 조달률 인상을 원하는 태국계 기업은 1978년 6월 태국공업협회 자동차부품부회와는 별도의 독자의 태국자동차부품제조업자협회를 설립하였음.

<표 5> 자동차에 대한 태국의 수입관세?거래세 및 물품세 (단위 : %)

주 : 승용차a 2300cc 미만, 승용차b 2300cc 이상


주 : 승용차a 2300cc 미만, 승용차b 2300~3000cc, 승용차c 3000cc이상,
CBU(Complete Body Units)는 완성차를 의미함
자료 : Ministry of Industry

□ BOI는 제2차 수입대체 공업화의 일환으로 디젤엔진의 국산화계획을 추진하였는데, 투자액이 2,500만 바트이상, 1982년 4월 1일부터 생산을 개시, 단계적인 국산화율 인상하는 조건에서는 투자기업을 공모하였음.

- 자동차 엔진계획에는 5개 기업이 BOI에 투자신청을 제출하여 최종 일본계 상용차 3사가 프로젝트를 추진하였으나 불황을 반영하여 어느 기업도 BOI의 조건을 만족하는 기업이 없어 계획은 중지되었음.

□ 1970~80년대 태국의 자동차산업정책은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목표로 관료에 의한 정책이었으나 실제 태국계 부품기업에 의한 정치적 압력에 따라 부품국산화정책이 추진되었음.

- 또한 조립기업에 대해서도 완성차수입의 금지와 조립사업에의 신규진입제한조치 등 국내산업보호정책을 취하였는데 보호정책의 결과 태국의 자동차생산은 1980년대에 연간 10만대를 전후하였으나 부품국산화정책은 기술원조 등을 통하여 어느 정도 부품기술을 이전하여 태국계 기업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

<표 6> 태국의 자동차 조립 메이커

자료 : Minstry of Industry

<그림 > 태국의 자동차부품 국산화율 추이


□ 현재 태국에서 영업중인 자동차 조립 기업은 17개社로 일본계 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중 승용차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기업은 6개社로 승용차 생산가능사는 총 10개에 달함.

- 태국내 최대 자동차 생산기업은 Auto Alliance社로서 비록 1998년부터 조업을 개시하였으나 주요 생산차종은 픽업으로서 연간 20만 1,000대를 생산하고 있음.

- 실제 태국에서 픽업은 방콕 등 도심은 물론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과 공단의 차량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일 생산업종으로 높은 생산능력을 보유하였다고 할 수 있음.

- 1964년부터 조업을 하고 있는 Toyota 태국공장은 연간 20만대를 생산하고 있으며, 승용차와 픽업을 동시에 생산하고 있음.

- 미쓰비시가 승용차, 픽업, 등 전차종에 걸쳐 연간 17만대 이상을 생산하고 있으며, 상용차 전문 Isuzu는 픽업과 트럭을 연간 13만대를 생산하고 있음.
ㅇ 이외에 승용차 전문기업은 Honda, GM, Siam Nissan 및 Bangchan Genral Assembly 등 일본계 기업과 YMC, Thai Rung, Thai Swedish가 각각 BMW, 푸죠, 볼보 등을 생산하고 있음.

□ 태국의 자동차 생산 및 판매 추이를 보면 1970년에 생산 1만대, 판매 4만 9,000만대를 기록한 이후 1983년에 각각 10만대와 11만대를 돌파하였으며, 1995년에는 생산과 판매가 50만대를 넘어서는 등 빠른 신장을 보였으나 1998년 경제위기로 양 부문에서 15만대 수준으로 급감하기도 하였음.

- 이는 태국의 경제위기의 한 원인인 자동차 리스업의 붕괴와 공장가동 중단, 수입가격 상승 등에 기인하는바, 태국경제가 완전한 회복을 달성하기 이전까지 1990년대의 빠른 신장세는 기대하기 어려움.

<표 7> 태국의 자동차 생산?판매대수

자료 : Federation of Thai Industry



석유화학산업

□ 태국의 석유화학산업은 원료인 천연가스가 1973년에 태국만에서 발견되고, 1960년대부터 진행된 수입대체공업화에 플라스틱제품 등 석유화학산업의 최종제품 수요가 증가하여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음.

- 당시는 석유위기 직후에 원료를 외국에 의존하는 국내에서 일관된 산업생산체제를 준비하는 중요성이 논의되었고, 수입대체 공업화과정에서 중간재의 수입이 급증하여 무역적자가 확대되었기 때문에 소재산업을 대상으로 하는 제2차 수입대체공업화의 구상이 ‘동부해안개발계획’으로서 실시되었음.

□ 1970년대 후반 경제사회개발위원회(NESDB)는 철강, 석유화학, 화학비료 등의 중화학공업을 개발에 즈음하여 민간부문이 독자적인 개발이 불가능한 대규모 프로젝트에 정부가 투자하는 민관합동 개발원칙을 제시하였음.

- 태국의 공업화는 1960년대 이후 정부는 인프라정비에 역할을 한정하였으나 고도성장기의 일본과 1970년대 한국의 산업발전의 성공에 자극받아 정부주도형의 중화학공업을 구상하였음.

□ 1981년 6월 新동부심해지역개발위원회(Eastern Seaboard Development Committee)가 설치되었는데, 同 위원회는 개발정책과 방침의 결정 및 공업프로젝트와 심해항계획에 관해 권한을 부여받았음.

- ESDC의 산하에는 동부임해지역개발, 화학비료프로젝트, 석유화학산업, 동부임해지역교육?사회개발계획 등 4개 소위원회가 설치되어있고 또 프로젝트와위원회의 조정을 담당하는 실무기관으로서 NESDB에 계획실시분석?조정 센터가 설치되었음.

- 태국정부의 동부임해지역개발에 관한 다음의 원칙은 다음과 같음.
ㅇ 맙다풋에 화학비료,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을 입지시켜 공업용 심해항을 건설
ㅇ 램차방을 노동집약형 경공업, Agro-Industry 등의 가공형 수출산업육성의 공업지구화, 상업항 건설
ㅇ 쌉다힙港의 확장 제고 등이나 이후 태국의 대내외 경제상황에 따라 전개됨.

- 석유화학산업 개발과 관련하여 태국정부는 태국만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의 공급과 최종제품수요가 충반하다는 결론을 내고 1983년 7월 제1차 석유화학 콤플렉스계획의 마스터플랜을 발표하였음.
ㅇ 이어서 1984년 2월에는 민관이 공동출자한 국가석유화학공사(NPC)가 설립되었는데, NPC 자본은 PTT와 同社의 4개 자회사 등으로 구성하였으나 정부측이 지분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음.

<표 8> 태국 석유화학제품의 수입관세

자료 : Minstry of Finance


전자산업

□ 동남아 국가들이 일찍부터 전자산업을 육성하여 산업을 주도하였던 것에 비해 태국의 전자산업은 비교적 늦게 시작하였음.

- 1980년대 중반까지 태국의 전자산업은 자국 기업에 의한 소규모 단순 조립, 내수 중심의 수준에 불과하였는바, 1981년에는 태국의 전자산업의 부가가치는 전체 제조업의 2.4%으로 ASEAN에서 가장 낮았음.

- 태국은 1980년대 외국인직접투자가 증가하였는데 주요 투자부문은 의류, 신발 등 경공업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 전자산업에 투자가 이루어진 사실과 비교하면 전자산업의 외국인직접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았음.

-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전자산업에 대한 투자비중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두배 가까운 신장세를 기록함.

□ 1980년대초 반도체 부문은 주로 미국계 기업에 의해 투자가 이루어졌고, 1980년대 후반 전자산업 투자를 주도한 기업은 Sony를 중심으로 한 일본계 기업들임.

- 특히 Sony 태국 법인은 자사 최초의 해외 반도체 생산기지였으며 1982년 2억 3,200만 달러 수출에서 1990년에는 10억 달러를 초과할 정도로 왕성한 생산활동을 벌임.

□ 이처럼 반도체가 주도하던 태국의 전자산업은 1980년대 후반 전자산업의 對태국 투자패턴이 주로 가전 및 공업용 전자 등으로 바뀌면서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었는데 기존의 미국, 일본 기업은 물론 한국, 대만 등 전자기업이 진출하여 다양화된 투자활동을 하고 있음.

- 일본계 기업가운데 기존의 반도체 설비를 가지고 있는 Sony는 비디오 카세트 테이프 공장과 마그네틱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여 수출주도형 투자활동을 통해 주로 인근 동남아, 중동 및 아프리카에 수출함.

- Sharp의 태국공장도 최대의 모기업의 최대 해외기지로서 냉장고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Toshiba는 라디오 카세트, CD기, 세탁기 등을 생산하였고 가장 높은 태국내 판매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하였음.

□ 태국에서 일본기업과 경쟁을 하고 있는 한국계 기업들은 기업마다 다소 상이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음.

- LG는 본국에서 경쟁력이 있는 통신장비 분야를 현지 파트너 기업과 합작형태로 투자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후 세탁기, 냉장고 등 백색가전 분야로 생산영역을 확대하여 유럽 등으로 수출을 하고 있음.

- 삼성은 수출을 위한 공장을 현지 파트너와 합작으로 설립하여 TV, 백색가전 등 전 품목에 걸쳐 전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수출하고 있음.

□ 태국 전자산업에 대한 직접투자 패턴이 변화하자 신규 투자는 더욱 다양화된 양상을 보이게 되었는데 미국, 일본 위주의 투자에서 신흥공업국까지 투자국이 증가되었음은 물론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을 가진 인도 등의 투자가 이루어져 이들 투자기업은 태국의 저임, 양질의 노동력을 투자 유인으로 생각하고 진출한 기업들이어서 태국의 전자산업은 단순 조립 수준에서 고기술 분야까지 확대되었음.

- 또한 태국의 소득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수출주도형 생산방식에서 내수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Sony는 태국정부를 설득하여 태국에서 생산되는 비디오 카세트 테잎의 약 20%를 국내판매를 하고 있음.

□ 또한 초기 태국의 전자산업의 특징이 외국계 기업에 의한 수출주도형 산업이었다면 1990년대 이후에는 Saha Union, Siam Cement 등 외국계-태국계 합작기업 설립이 많이 생겨나 이후 태국계 전자기업 설립에 영향을 줌.

- 즉 초기 외자계 기업들과 경험에서 생겨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설립된 태국계 기업은 Thai Circuit 등이 있는데, 同社는 태국에 증가하는 외국계 전자 장비공장의 수요를 맞추어 circuit board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음.

- 이를 배경으로 태국계 기업들의 기술수준 향상은 물론 국제규격 제품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양질의 제품을 공급하게 됨.

□ 이처럼 짧은 시간에 생산능력과 기술수준이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태국의 전자산업은 기술력과 경쟁력 부재와 부족한 전자산업 인프라가 전자산업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음.

- 전자산업은 태국은 물론 동남아 국가들의 주요산업으로 자리잡았고 세계시장에서 동남아 국가간 경쟁은 무척 치열함.

- 인프라 부족은 외자기업 유치경쟁에서 실패함은 물론 생산비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태국산 전자제품의 경쟁력은 상실하게 될 것임.

- 1990년대 말부터 태국이 처해 있는 문제점으로는 태국산 제품의 수출이 증가하면서 EU와 미국 등의 보호장벽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임.

- 세계시장에 수출하는 태국산 전자제품은 대부분 외자계 기업의 제품인 관계로 수입국들은 이미 BOI로부터 수입관세 면제, 지원금 등 각종 보조를 받는 기업인 것으로 판단하고 불공정 무역임을 주장하고 있음.

- 이러한 이유로 이미 미국은 태국산제품에 대해 반덤핑 판정을 했고 일부 품목에 대해서 GSP 혜택을 철회하였고 세계시장의 우호적이지 못한 환경에 의해 태국의 전자산업의 도약과 새로운 투자기업 유치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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