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경제위기 : 원인과 분석
(Nukul 위원회 보고서)

본 눅쿤보고서는 1997년 외환 위기이후 인 1998년에 작성 된 것이나
태국 경제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보고서임으로
방대한 양의 본 내용 게재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요약하여 게제하기로 한다.


Ⅰ. 序言

- 비록 경제당국에서 경제위기를 미리 예견하였다 하더라도 예방조치를 취할만한 정책결정력이 부재하였고
위기발생이후에도 인기정책에 편승하여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못함.

- 이는 결과적으로 외환보유고의 소진과 함께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엄청난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게 됨.

□ 同 보고서는 태국 재무부가 금융시스템의 효율성과 운영개선을 위해 조직한 특별위원회가 실사와 증언을 토대로
작성하였으며, 위원회는 전직 경제관료, 前 중앙은행총재, 前 중앙은행 금융국장 및 민간부문의 인사들로 구성됨.

- 보고서의 내용은 1990년대 이후 태국의 통화정책, 금융자유화, 1996년 이후 금융기관 위기,
1997년 바트화 방어 및 제언으로 구성됨.



Ⅱ. 1990년부터 1996년 상반기까지 태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 1976년 제4차 경제사회개발계획에서 태국은 방콕을 동남아 금융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역외금융센터 설립계획을 처음으로 명시하였고 1990년까지 외자유입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도를 위해
외환규제를 완화해 왔음. 이후 1993년 9월 태국 재무부는 방콕역외금융단(Bangkok International Banking Facilities, BIBF) 설립을 발표함.

- 외환규제 완화를 위해서는 국내 금융기관 들의 국제기준에 맞는 체질강화가 필요하였으나
이를 위한 방안은 강구되지 않았음. 1993년 중앙은행은 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너무 높은 것으로 평가하였고
모든 금융 기관들에 대해 자기자본비율을 BIS 요구치 이하로 내리는 것을 용인함.
또한 태국은행의 부실채권에 대한 정의도 국제기준보다 낮았음.

- 태국의 고정환율제도의 도입과 외환규제의 완화와 함께 BIBF의 설립은
환율변동위험으로부터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값싼 외자가 무분별하게 유입되는 계기가 되었는 바,
1995년 5월까지 BIBF 대출은 중앙은행의 기대치를 휠씬 넘어섬.

□ 고정환율제도와 급격히 증가하는 외자유입에 힘입어 태국경제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연평균 8%의 성장을 했고 1993년까지는 물가상승률도 비교적 낮음.

- 태국의 경제상황이 양호하고 기대수익이 매우 컸으므로 국내외 투자자들의 투자가 증가하였는데
GDP에 대한 내국인 투자의 비율이 1996년에는 41.4%에 달함.
그러나 투자확대가 가속화됨에도 불구하고 낮은 국내저축율은 내국인 투자자들의 외자를 통한
자금조달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음.

- 많은 외자가 유입되었음에도 불구, 이중 대부분은 차입이었고 절반이상이 단기성이었음.

- 외자의 유입과 상업은행 들의 여신확대에 따라 통화공급은 증가했는데 1991년 후반부터 1996년 말까지
M2의 공급은 매년 15.3%씩 증가했음. 그러나 금융, 증권회사 들의 상업어음까지 고려한다면
실제 M2는 1년에 21.1%의 비율로 급격히 증가한 것임.

□ BIBF운영과 급증하는 대출증가는 국내 이자율을 1992년∼1994년에 걸쳐 10%에서 5∼7%로 하락 시켰고
이자율하락은 토지, 주식 등을 포함한 자산의 가격을 높은 수준으로 상승시킴.

- 기업들의 생산부문 투자를 위한 외자도입은 향후 생산성향상 및 산업구조고도화를 기할 수 있으나
금융기관들의 대출조건 완화한로 많은 외채들이 생산성이 없는 부동산부문 등에 유입되었음.

- 1996년까지의 경제여건이 외견상 양호하여 막대한 자금이 해외로부터 유입되었기 때문에
실물시장의 침체분위기가 감지되지 않았음.

□ 바트화의 가치는 1995년 중반까지 하락하였으나 1995년 중반부터의 달러화 강세에 따른 동반 강세로
이후의 물가상승률에 큰 영향을 미침. 이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태국에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상실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함.

□ BIBF가 운영을 시작한 후 외환보유고가 증가하였는데 이는 민간부문 단기외채 증가와
투기자들의 단기 이자율차이의 수익을 기대한 자금 유입 때문임.

- 이자율이 안정되면 경기과열을 억제하는 데에는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이 더 적합하여
태국의 경우 흑자재정이 필요했음.

□ 태국의 고정환율제도에서 투자자들은 무제한으로 바트화를 시장으로부터 혹은
중앙은행으로부터 매수가 가능하였는 바, 이는 투기자들이 국내외에서 바트화에 대해 투기할 수 있음을 의미함.
그러므로 과도한 투기를 막기 위해서 태국으로서는 환율을 유지하기 위한 충분한 외환보유고가 필요하였음.

- 그러나 환율변동이 제한되어 있고 바트화가 많이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투기환경은 좋지 않았음.
통화정책이 바트화를 보호하기에 충분히 강력하고 돌발 사건을 다룰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외환보유고가 있다고
중앙은행이 확신하는 한 투기방지가 가능했음. 그러나 태국은 단기외채를 많이 조달했고
채권자들은 원금상환의 압력에 처했을 때 커다란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인지함.

□ 중앙은행은 통화와 재정정책의 실패로 바트화의 가치를 유지하고 외자유입을 늦추기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했으며, IMF도 1994년 이후 지속적으로 태국이 신축적인 외환정책 운용을 권고함.

□ 1996년 하반기부터 태국경제가 불경기로 빠져들자 대외 신인도는 급격히 하락하였으며
외화의 급격한 유출현상이 벌어짐.

- 1995년 멕시코 위기에 이어 바트화에 대한 투기가 발생했을 때 중앙은행은 상황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간을 소모했고 외자유입에 따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

□ 1994년 멕시코사태의 사례를 통해 많은 연구와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의 신축적인 통화정책운영을 취하지 못한 것은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데 기인함.

-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는 한 자본자유화 조치는 시기상조였으며,
막대한 외자유입은 중앙은행의 효율적인 통화정책운영에 장애요인 이었음.




Ⅲ. 바트화 가치 방어 : 1996년 6월∼1997년 7월

□ 태국의 경제상황 악화와 수출둔화가 가시화되자 1996년 말부터 투기꾼들은 바트화에 대해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함.

- 1996년 Moody's社의 태국에 대한 단기외채 신용등급 하락이전부터 자금시장 분석가들은
태국경제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함.

- 태국경제에 대한 신용도 하락으로 자본유입은 1996년 3/4분기부터 감소하기 시작했으나
순자본 유출 현상은 1997년 2/4분기까지 나타나지 않았음.

□ 바트화가 투기꾼들의 공략대상이 되는 동안, 설상가상으로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중앙은행이 국고의 지출을 늘림으로써 재정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는 태국정부와 중앙은행의 신용도를 하락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함.

- 1997년 태국은 갑작스러운 개혁이 통화체계에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판단으로
태국의 신용등급이 더욱 하락했음에도 환율정책 조정을 염두에 두지 않았음.

□ IMF는 바트화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자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고금리를 초래 시킬 뿐만 아니라
외환보유고의 감소도 수반하게 될 것이라며 태국정부에 대해 결단력 있고 유연성 있는 정책을 권고했음.

□ 1997년 당시 중앙은행은 바트화의 위기가 단지 한시적이라 판단하였고
환율정책을 수출과 당시의 외환정책에 대한 영향에 특별한 비중을 둠.
이후 환율문제는 부채와 금융기관들의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다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중앙은행의 관계자들은 이런 문제들이 투자자들에게 태국경제의 신용도 회복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믿음.

□ 중앙은행은 바트화를 방어하기 위해 현물시장개입과 스왑거래 2가지 방법을 고려했으며
상당한 양의 스왑으로 방어하였는데 중앙은행의 입장에서는 현물시장 개입보다 스왑이 현재 통용중인
바트화의 통화량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유용한 방법이었음.

- 중앙은행은 각 매매에 필요한 스왑거래를 위해 태국은행, 방콕은행, 끄룽타이은행, 태국 농민은행,
싸얌 상업은행, 그리고 태국과 해외에 지사를 두고있는 외국은행들 중에서 대리인들을 선정하였음.
그러나 시장규모와 각 거래자들의 능력을 고려해볼 때 바트화의 위기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개입했던 규모는 너무 지나친 정도라고 판단됨.

□ 바트화가 통화 바스켓에 묶여 있었을 때는 중앙은행이 매일 아침 환율안정기금(EEF)을 통해
일일고정환율을 공시했고 따라서 환율안정기금의 운영자는 외환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

□ 1996년 하반기 부실 금융기관문제는 태국의 신용도에 악영향을 줌.
1996년 9월 3일 Moody's社의 태국의 단기외채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이후 해외투자자본의 유출을 야기시킴.

□ 1997년 태국정부가 예산 500억바트 삭감 발표후 1월 처음 3주간에는 상당한 양의 자금유입이 있어
중앙은행은 24억 3,000만 달러나 되는 외환을 매입하는 등 외국인 투자자들이 재투자양상이 벌어짐.

- 그러나 1997년 1월 평가절하의 소문과 중앙은행의 월간경제데이터가 발표 되었을 때
투자자들은 바트화를 매각하고 달러를 매입하기 시작함. 이후 중앙은행은 외환 손실을 방지하기위해
시장에 개입하면서 소문을 부정함.

- 결국 중앙은행은 1997년 1월과 2월에 바트화 방어에 78억달러를 소진하였고,
2월말의 공식 외환보유고는 381억으로 감소함.

□ 1월과 2월에 있었던 투기꾼들의 바트화 공격은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관리에 문제점을 드러내었음.
중앙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고는 386억 5,000만 달러였으나 스왑계약과 외환거래법에 의해
금지된 다른 총액들이 포함된다면 52억 8,000만 달러에 불과하였으며, 비유동자산을 제하고 나면
시장 개입에 사용할 수 있는 액수는 39억 3,000만 달러에 불과하였음.

- 바트화의 불안양상은 여전히 지속되어 환율정책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부문의 외환보유고는 고갈되었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여전히 남아 있는 외환보유고를
바트화 방어에 사용하려고 했음.

□ 비록 바트화는 부정적인 뉴스가 있을 때마다 절하압력을 받고 있었지만
3월과 4월 동안 외환시장은 비교적 안정되었음.

- 5월 당시 재무장관이 바트화의 평가절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무장관 교체설이 나돌자
외환시장에서는 바트화 공격이 재개됨. 5월 14일 이후 태국은 당면한 외환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없었으며,
공식 외환보유고는 월초 243억 달러에서 25억 달러로 급감하였음.

□ 5월의 바트화에 대한 2차 공격 후 중앙은행과 재무장관은 뒤늦게 외환시장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시작함.

- 바트화가 심각하게 공격을 당하던 5월14일에 IMF 총재는 태국부총리에게
▲ 탄력적인 환율정책 운용 ▲ GDP대비 1% 재정긴축 ▲ 긴축 통화 정책
▲ 재정부문을 강화하는 포괄적인 조치실행 등을 권고함.

□ 6월말 재무장관이 교체되고 외환보유고가 급감하면서
중앙은행은 더 이상 고정환율제를 고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환율제도를 변동환율제로 이행하는 것이 마지막 대안임을 확인, 7월 2일 변동환율제도 이행을 전격 발표함.




Ⅳ. 바트화 방어와 관련한 책임자들의 역할

□ 외환보유고는 국가의 경제운명을 가름하고 신용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임.
따라서 외환보유고 유지가 최우선시 되어야 함.

- 또한 환율은 금융제도의 도구에 지나지 않으므로 금리가 올라감에 따라 중앙은행은
환율을 경제적 상황에 맞도록 조절할 수 있어야 함.

- 1997년 바트화 위기 당시 IMF는 수 차례에 걸쳐 투기자들이 중앙정부가 방어할 수 있는 외환보유고 이상의 자금이
있다고 경고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의 외환 책임자들은 현재 경제상황에 적합하지 않게 단지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외환보유고를 고갈시켰음.

□ 이는 만약 당시의 책임자들이 다른 산업에 역효과를 우려해서 외환제도를 개선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면
납득할 수 있음. 그렇지만 중앙은행은 자기기만 없이 현실에 기초하여 문제를 파악 해야함.

- 외환보유고는 제한되어있고 몇 달 내에 고갈될 수도 있으며, 한번 고갈되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움.

- 1997년과 비슷한 상황이 진행되던 1981년 태국은 바트화가 평가절하 되었을 때 몇 금융회사가 폐쇄되어야 했고
중앙은행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했음.
바트화의 평가절하는 외국에서 돈을 차입한 회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나 회사의 수와 손실은 제한적임.

□ 반면 고갈된 보유고에 의해 중앙은행은 공공부문과 기업부문에 예기치 못했던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음.

-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평가절하 하는 국가와 보유고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 통화를 평가절하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음.

□ 바트화를 보호하기 위해 보유고를 고갈시킴으로써 6,000만 이상의 국민들에게 경제적인 고통을 안겨 주게 됨.

- 투기에 대한 방어에서 태국이 패배하여 이미 300억 달러이상을 잃었으며, 총리 차왈릿 용짜이윳,
재무부장관 암누어이 위라완, 중앙은행 총재 렝차이와 외환정책 관련 중앙은행 간부들은 책임이 큼.

□ IMF의 고위간부 들은 차왈릿, 암누어이 및 렝차이에게 외환정책을 재검토하도록 반복해서 경고했음.

- 오래 전부터 IMF는 변화를 종용했으며, IMF총재도 개인적으로 태국을 4번이나 방문했음.
태국측은 위기당시에 대처방안이 없었고 혹 대처방안이 있더라도 외환보유고는 이미 고갈되었음.

□ 책임 있는 사람들 중에서 렝차이 중앙은행 총재는 가장 많은 책임이 있음.
중앙은행총재로서 그는 모든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며, IMF 고위간부 들과 만날 기회도 많았음.

- 중앙은행총재의 위치는 장관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 손실이 총재가 잘못했을 때보다 크지 않기 때문에
재무부장관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음.

- 렝차이 중앙은행총재는 중앙은행과 전국민이 손실을 입도록 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의 여지가 없음.



Ⅴ. 방콕상업은행(Bangkok Bank of Commerce, BBC) 지원과 금융시스템에 대한 영향

□ BBC의 문제는 1991년 4월 은행실사에서 부실채권이 총자산의 26.73%인 182억 바트라는 결과로 알 수 있듯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처해있었음.

- 이후 중앙은행은 1992년 BBC로 하여금 8억 바트를 증자하고
1994년까지 증자에 관한 계획을 제출하도록 명하였으나 1993년 실사에서는 부실채권이
총자산 대비 약 40%인 385억 바트를 기록, 오히려 증가하였음.

□ 그러나 중앙은행의 BBC처리방안은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음.

- 첫째, 다른 금융기관에 악영향을 우려하여 감자조치 없이 BBC의 주식을 매입하였고
증자관련 보도와 부실채권증가에 관한 보도로 중앙은행의 금융기관 관리에 대한 신뢰를 상실함.

- 둘째, 금융기관개발기금(FIDF)의 BBC에 대한 지원이후 손실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음은
同 기금의 역할이 퇴색하고 있음을 보여줌.

□ BBC 문제해결에 있어 정책의 투명성결여로 인한 실패는 부실채권관리에 보다
중앙은행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조치가 부재한 것이 주요 원인임.

- 수십 년간 비정치적이고 성실한 정책결정으로 명성을 유지해온 중앙은행은 감자조치와
BBC경영개선에 대한 정책실패로 국민들의 중앙은행에 대한 이미지에 큰 변화를 가져왔음.

- BBC의 사례는 단순히 중앙은행의 명성이 훼손된 사건이 아닌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음.
同 사례가 중앙은행의 몰락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임.

Ⅵ. 금융기관개발기금(FIDF)

□ FIDF가 설립되기 이전 중앙은행은 상업은행법(Commercial Act Law)과 파이낸스,
증권 및 투자신탁 회사법(Finance Company, Security Company and Credit Foncier Company Law)에 근거하여
금융기관들을 감독하였음.

- 중앙은행은 자금경색기간에 6개월미만의 부동산담보 대출을 통해 금융기관들을 지원하였음.

- 1985년 왕실칙령을 통해 금융기관개혁과 안정을 위한 목적으로 FIDF가 설립되었으며,
왕실칙령은 FIDF의 활동을 명시하였고 많은 권한을 부여하였음.

- 同 기금은 합법적인 실체로서 정책수립과 감독을 하는 위원회를 두었으며,
중앙은행은 기금운영에 절대적인 영향을 행사함.

□ FIDF는 금융기관이 부실화 되었을 경우,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였고
금융시스템에 대한 영향을 분석함. 부실금융기관의 파산이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는 경우,
기금은 부실금융기관의 재건을 지원함.

- FIDF는 모든 금융기관이 예치한 자금으로 부실금융기관에 자금을 지원하며,
신뢰도가 회복되면 즉시 지원자금을 회수함.

- 또한 同 기금은 부실금융기관을 인수하여 부채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금융기관을 지원하기도 함.
다른 방법으로는 부실금융기관의 우량자산을 건전 금융기관에 인수토록 하고
불량자산은 부실금융기관이 처리토록 함.

- 위의 금융기관지원 활동과는 별도로 기금은 금융기관경영진에 대해 개선을 위한 정책수립 활동을 하고
부실금융기관이 건전기관으로 전환할 때까지 경영전반에 관여함.

- 同 기금은 예금자 보호는 물론 손해를 입게 된 채권자와 고객관리 활동도 함.

□ FIDF의 부실금융기관 지원원칙은 매우 명확하였으나 1996년과 1997년 동안의 지원활동은
원칙에 의하지 않고 무분별한 지원이 많음.

□ 1996년부터 1997년 2월까지 14개 파이낸스社에 대해 500억바트의 금융지원을 하던
FIDF는 1997년 6월 16개 파이낸스社에 대해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으며,
이때에는 기금의 지원을 받는 파이낸스社의 수는 58개사에 이르렀음.

- 1997년 7월 태국이 변동환율제로 이행함에 따라 바트화의 가치는 폭락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외채상환부담이 늘어난 파이낸스社들은 유동성부족으로 인해 부실채권이 급격히 증가하게 됨.

- 同年 12월 부실화 된 58개 파이낸스社중 56개사에 대한 폐쇄조치가 있기전까지 기금이 부실금융기관에 대해
자금을 지원한 규모는 7,000억바트에 달함.

□ FIDF의 의무는 예금자 보호에 있음. 그러나 위기발생이전 금융기관들의 신용평가 등의 절차를 무시하고
금융기관을 지원한 것은 적절하지 못함.

- 기금의 지원금 상환능력이 없는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무분별한 보증과 자금지원은
금융부문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장애요인 이었으며, 대외신인도 하락요인으로 작용함.

□ 1996년부터 중앙은행은 금융기관의 안정과 급속한 대출증가에 대해 여러가지 조치를 취하였으나
1997년부터 대외신인도 하락에 따라 외국인자본이 유출되기 시작하였고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됨.

□ 1996∼1997년간 금융부문의 문제는 경제 구조적인 문제와 관련 깊음.
통화바스켓환율제에 의한 바트화의 對달러 고정환율제도는 고금리정책으로 이어졌으며,
외국자본은 금리차를 이용하여 태국으로 많이 유입되었음.

- 1992년 BIBF의 설립은 외자유입을 촉진시켰고, 이는 민간인들의 고급차 등 사치성 소비재의 할부구매를 부추겼으며,
이에 따라 경상수지도 GDP대비 7-8% 적자를 기록하였음.

- 파이낸스社는 단기로 외자를 도입하여 중장기로 법인에게는 부동산담보로 개인에게는 할부로 자금을 대출해 주었고
이는 경제전반에 거품을 형성하기 시작함.

□ 1996년의 수출둔화(0.4% 증가)는 경제위기의 주요요인으로 작용함.
외국 신용평가기관은 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기 시작하였고
외국의 채권기관들은 투자자금의 회수를 요구해왔음.
또한 할부구매의 급감과 대금지불불능에 의한 부실채권이 급증함.

- 결국 1996∼1997년의 금융기관문제는 금융시스템에서부터 개개 파이낸스社의 문제로 말할 수 있음.

- 경제가 위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과 파이낸스社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고
외국 채권자들의 자금회수현상은 시중의 유동성 부족현상을 심화시킴.

- 중앙은행은 정책혼선으로 인해 금융기관 예금자들에 대해 직접 보증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인도는 회복되지 않음.

- 결국 기금의 무분별한 지원과 정부보증은 금융기관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데 있어서
시간 끌기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치유책은 되지 못하였으며 시간이 지날 수록 혼란이 가중되었음.

- 태국정부는 금융기관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부실금융기관 영업정지와 기금을 통한 지속적인 지원이라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음.
그러나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지원은 기금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는 판단을 한 중앙은행은
1997년 6월 16개사의 영업정지에 이어 8월 42개사를 영업정지를 명령함.

- 1997년말까지 금융기관지원으로 인해 기금에서 지출된 금액은 약 7,020억바트에 달하며
폐쇄된 금융기관의 지급보증을 위해 어음에 보증을 한 금액도 3,980억바트에 달함.
12월 8일 금융기관 폐쇄조치이전까지 기금이 손해를 입은 액수는 5,470억바트임.

□ 금융기관의 문제를 볼 때 중앙은행의 금융기관 감독체계가 부실하였음을 알 수 있음.

- 데이터관리의 소홀과 자료관리의 부실로 좀더 투명한 자료공개와 관리가 부재함.
따라서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근본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조차 파악하기 어려웠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기는 심화되어감.

□ 중앙은행은 적극적인 외자도입을 위해 파이낸스社 설립을 허용하였으나 감독에 소홀하였음.
또한 위기기간동안 금융기관문제에 대해 중앙은행의 FIDF를 통한 지원방법은 적절하지 않았고
본래의 기금목적을 왜곡하게 됨.

- 이는 중앙은행과 정부의 정책혼란으로 이어져 신뢰감을 심어주지 못했고 감독과 조사체계의 개선이 필수적임.

- 기금은 자금시장에서 20%의 높은 금리의 단기자금을 조달하여 연간 지출되는 이자가 1,000억바트에 달함.
장기자금 조달동원 실패로 기금 운영에 막대한 부담이 가중되었으며, 결국 세금납부자의 부담으로 전가됨.



Ⅶ. 태국 중앙은행 구조와 경영상의 취약점

□ 은행 고위직 간부들 사이의 불화는 부하 직원들의 업무수행에 장애요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한 부처 이기주의는 은행과 업무에 악영향을 줌.

- 또한 정치권의 관여는 과거보다 중앙은행의 의사결정과 정책수립의 독립성을 상실케 했음.

□ 최근 중앙은행은 빠른 성장과 함께 관료주의화 그리고 이기주의화 되어 정보교환 시스템의 결여로
협력체계는 구축되어 있지 않음.

- 중앙은행의 상업은행과 금융기관 감독에서 알 수 있듯 허술한 대응조치는 금융기관 약화를 부채질 하였는 바,
이는 중앙은행 직원들의 책임의식 결여에서 기인한다 할 수 있음.

□ 고위관리자중에는 경제, 회계 및 법률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으나 그들이 반드시 조직력과 경영능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음.

- 중앙은행의 승진제도는 일단 선임위치에 오르면, 크고 작은 부서에 관리자로 임명됨.
앞으로 중앙은행은 전문지식은 물론 행정관료로서의 적합성을 판단하여,
부서의 발전과 조직운영에 있어 효율화를 추구할 수 있는 자를 배치하여야 할 필요가 있음.

□ 또한 중앙은행 직원 대부분이 능력과 지식에 제한이 있으므로 앞으로 업무수행에 있어
나은 판단력을 배양하기 위해 다음의 방법을 제안할 수 있음.

- ▲ 관련 금융기관에 직원을 파견하여 실무연수를 통해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 학업성적위주의 직원선발에서 중앙은행 조직에 적합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금융기관의 전문가를 채용함.




Ⅷ. 위원회의 제언

□ 중앙은행 운영의 개선을 위해 통화체계 운영의 효율성과 독립성이 필요하며,
책임 있는 행정과 권한배분 및 감독체계를 위해 법률개정이 필요함.

- 이는 몇몇 중앙은행 관리의 판단착오로 인한 1997년 5월 외환보유고를 소진한 것과 같은 愚를 방지할 수 있음.

□ 경영구조 제언.

- 재정정책 운영에 관해 재무장관과 조세국은 장관급으로 구성된 감독체계를 구성하여
업무와 운영의 효율성을 기할 필요가 있음.

- 통화정책의 독립적 운영을 위해,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금융기관 감독의무가
중앙은행에서 분리되어야 한다고 판단함.

ㅇ 조직체계가 양호하더라도 중앙은행의 담당부서에서는 지난 시간동안 협력의 실패사례가 많음.
ㅇ 감독기능 분리는 정책수행에 있어 발생할 수 있는 업무영역 다툼을 제거할 수 있음.

- 1997년 위기당시 금융기관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을 한 FIDF의 역할은 순수 예금자 보호기관으로 유지되어야 함.

- 변동환율제에서는 환율안정기금(EEF)은 불필요함.

- 통화정책의 관한 정보공유는 필수적으로 중앙은행, 증권거래위원회, 금융기관 들로 구성된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할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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