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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의 화인사회
동남아의 화인사회

                              한국외국어대학교  199518030   황원재

조흥국 외, <동남아의 화인사회 - 형성과 변화> (오름, 2000)을 읽고


Ⅰ. 서론
- 화교의 정의와 정체성

화교(華僑)란 해외에 정주(定住)하는 중국인, 즉 본국을 떠나 해외 각지로 이주하여 현지에서 직업적으로 정착하고, 경제활동을 영위하면서 본국과 어떤 형태든 문화적, 사회적, 법률적, 정치적 측면 등의 어느 한 측면에서 유기적인 연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인 또는 그 자손을 뜻한다.
1909년 이후 중국은 혈통주의에 입각한 국적법을 제정하여 화교를 국적을 잃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 보호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동남아 국가들이 식민지에서 독립하고, 중국이 국공내전(國共內戰)을 거치면서 공산주의 국가이념을 채택하면서 동남아시아의 화교 거주국과 중국과의 정치, 경제 체제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 당시 이중국적으로 생활하던 화교는 내외로부터 중간자적인 생활 방식에서 벗어날 것을 강력하게 강요받게 되었다. 또한 변해버린 중국은 그 이데올로기나 정치체제로 보아 화교들의 후예들이 정치적, 법률적 귀속감을 지닐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미소 냉전체제, 격화하는 동서대립, 미국의 중국봉쇄정책이 이어지는 1970년대 초까지 그들은 스스로의 처신을 결정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이 독립했을 때 자신들의 실존과 관계되는 정치적, 법률적 귀속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화교들은 동남아시아 거주국의 시민권과 국적을 선택하여 스스로 화교에서 화인(華人)이 되었다. 華僑(화교)의 華자는 중국을 가리키는 중화의 약칭이며 僑자는 仮거주지를 뜻한다. 즉 자기들은 거주국에 임시로 살고 있는 미아가 아니며, 중국국적을 가진 채 남의 나라에 벌이를 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1997년 발생한 동남아의 경제위기로 인해 비록 현지에 동화되었다고 인식했던 화인들도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몰락이냐 재생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위기를 통해 현지사회에 동화되어 있다고 믿었던 화인사회도 특별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이 사회 내에 바르게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화인들의 정체성과 현지와의 관계설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문제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동남아와 화인들에 대한 이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부상하고 있고 이미 오래 전부터 동남아의 화인들은 동남아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실제로 화인문제는 흥미로운 주제이고 화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동남아를 이해했다고 할 수 없는 거대한 주제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에서 ‘동남아의 화인사회’ 라는 책은 동남아 화인들의 정체성 및 동화의 문제를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6개의 나라의 역사와 화인들의 상황에 대해 쓰여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내가 밝히고자 하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화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정체성의 방향에 따라 화인들의 경제적 및 정치적 활동과 사회적 위치의 성격이 달라지며 화인사회와 토착사회의 관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동남아 화인사회들의 정체성은 제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공통된 흐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50년 이후 화인들이 각각 처하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에서의 상황이 다양하게 전개되면서 정체성은 나라마다 그 변화의 속도와 방향에서 서로 다르게 발전되었다. 그러나 최근 화인들의 정체성의 방향이 다시 중국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점은 동남아의 여러 국가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한 변화의 획기적인 배경은 해당 국가의 화인, 특히 화인사업가들과 중국과의 경제적 접촉이 최근 급증한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6개 나라의 화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각 국의 특성에 따라 알아보고, 동남아 화인사회의 전개 방향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태국- 원만한 동화와 중국적 정체성 사이에서
태국 화인들의 정체성의 문제는 1910년을 전후로 중화민족주의의 대두로 큰 변화를 갖게 되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점은 1910년대 이후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화인들의 타이 사회로의 동화가 극히 완화되었다는 것이다. 스키너는 1918-1932 년간 화인들이 타이 사회로 동화되는 것을 저해한 원인으로 다음의 네 가지 요인을 든다. 첫째, 위의 기간 매년 7-15만 면의 중국인들이 태국으로 유입되어 중국태생 화인들의 숫자가 증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화인사회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커졌다. 둘째, 보다 중요한 요인으로 중국인 여자의 이주가 크게 늘었고 전 가족이 함께 이주하는 경우도 많아졌다는 점이다, 셋째. 중국어 학교의 증대로 화인 2세들이 중국어와 중국문화에 대해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넷째, 중국에서의 정치적 변동 특히 일본의 침략으로 중화민족주의적 정서가 화인 2세들에게도 미쳤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볼 때 타이 정부의 중국인 이주제한 정책과 특히 1950년 이후 중국으로부터 이주가 종식된 상황에서 태국 화인사회는 점차 타이사회로 동화되어 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중국국적 화인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었다는 점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처럼 보인다. 태국은 동남아 국가들 중에서 화인들이 토착사회에 가장 잘 동화된 나라로 간주된다. 이 점과 관련하여 스키너는 이주 중국인들의 후예들이 대부분 타이 사회에 완전히 동화하여 토착주민과 구별할 수 없게끔 되어버리며 4세대 째에는 중국인이 더 이상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태국에서의 화인들이 높은 동화율에 대해서는 다양한 원인들이 제시되어 왔다. 이에 대해 스키너는 화인들이 타이 사회로 쉽게 동화되는 것을 다음의 요인들로 설명한다, 첫째, 음식과 종교 등에서 확인될 수 있는 것처럼 타이 문화와 중국 문화간에는 상호 유사성이 있다. 둘째, 타이인과 중국인들은 신체적 외모에서 그 차이가 비교적 적다. 셋째, 나이 문화의 활력과 지속성, 그리고 태국의 독립보존에 대한 타이인들의 역사적 긍지 등이 중국인들에게 타이 사회로의 동화에 대한 매력을 주었다, 넷째. 태국에서 중국인들이 거주와 이동의 자유를 가졌기 때문에 타이 사회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다섯째, 대부분의 타이 정부들이 다양한 경제적 조치들과 타이어 중심의 학교교육 등의 정책을 통해 중국인들을 타이 사회에 동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러한 노력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태국 화인들이 대부분 태국국적을 취득하고 현지사회로 귀화 해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동화의 시각을 강화 할 것이다.
하지만 태국 화인 사회의 잠재적 종족 정체성은 화인들의 문화적 실생활의 제반 측면, 특히 언어생활과 종교에서 분명히 드러나며 이것은 스키너가 강조한 도화의 한 면만을 본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선 언어생활을 보면 비록 거의 모든 화인들은 타이 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해 타이어를 습득했지만, 대부분은 동시에 부모의 고향의 방언을 구사하며 때로는 만다린 혹은 다른 방언까지도 구사하는 등 이중언어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들이 중국어를 선호하는 이유는 첫째, 가족간의 대화수단이기 때문이며, 둘째, 사업상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종래 동화의 과정에 있어서 교육의 문제와 현지어 습득이 중시되어, 스키너를 중심으로 한 여러 학자들은 타이 사회에서 출세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타이 학교에서 타이어 교육과 태국식 교육을 받는 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했다고 말한다.
종교생활에서도 화인들의 잠재적 종족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스키너는 중국인들과 타이인들의 종교적 생활에 있어서의 기본적 유사성이 궁극적으로 동화를 촉진시킨다고 추측하면서 “대승불교의 요소를 포함한 화인종교는 테라바다 불교와 비슷하다, 중국인들의 종교적 정서는 배타적이라기보다는 절충주의 적이고 혼합주의 적이다. 따라서 종교는 태국서 중국인들의 동화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불교를 반드시 동화 촉진의 원인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각 종교적 생활간에 계율에 대한 관점을 비롯하여 많은 세부적 차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상 살펴본 바를 종합해 볼 때 화인들은 타이 사회와의 오랜 다양한 접촉을 통해 한편으로는 동화되어 점차 타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갔지만 다를 한편으로는 경제적, 조직적, 사회적, 문화적 활동을 통해 “중국적인 것”을 고수하면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상황주의적 요인에 따른 동화와 다른 한편으로는 근원주의적 논리에 따른 정체성을 결합하여 태국에서 화인들이 보여주는 이중적 정체성이란 한 독특한 문화적 적응의 측면을 말할 수 있다. 커글린은 이와 관련하여 태국의 화인들이 타이 사화와의 오랜 기간의 접촉을 통해 적응과 융통성의 문화적 패턴을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즉 그들은 문화적 사회적으로 타이 방식을 수용하는 것을 배워 왔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적인 근원적 특성들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이중적 정체성은 중국인들의 실용주의적 인생관과 결부시킬 수 있을 것이다.

2. 베트남- 월경 소수 민족으로서의 베트남 화인사회
인도차이나 반도를 구성하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삼국 중에서도 베트남이 중국대륙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다른 곳과는 정도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를 개괄적으로 관찰한 사람은“베트남과 중국의 관계는 사랑과 미움의 고착 상태로서 베트남인들의 정신은 엄청난 중국인들의 ‘엷은 복사 본’또는 ‘문화적 해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동시에 역사적 문화적으로 형성된 불신과 의존의 관계” 라고 설명하며 미시적인 접근을 하는 인류학자는 “중국의 영향은 마을에까지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고 해석한다. 중국대륙이라는 중심부로부터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주변부들 중의 하나가 베트남이라고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베트남인들의 화인에 대한 태도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견해가 비교적 일반적인 것 같다.
1) 화인들과 베트남에서 출생한 화인들을 모두 외국인으로 생각하는 선입견 2) 중국인들은 법적이거나 시민권적인 차원보다는 가족과 씨족에 대해서 더 큰 충성심을 발휘하면서 거주하는 지역과는 관계없는 문화적 정체성을 고수하는 사람이라는 인식 3) 화교는 베트남 사회 속에는 있지만  베트남 사회의 집단은 아닌 것이며 중국 인성이라는 점은 결코 꿰뚫고 들어갈 수 없는 것으로서 그러한 점이 베트남에서 출생한 화인에게도 만연되고 있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이상의 세 가지 입장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불변하는 사실 하나는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베트남 내에서 화교 및 화인은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점이다. 그 이방인성의 정도는 상황에 따라서 상당히 달리 나타났던 것이 지금까지의 진행과정이었다.
초기에 중국인들이 베트남에 이주해온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기근이나 전염병과 같은 자연재해를 피해서 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 나선 것이었지만 베트남이 중국과 별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화인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베트남에 적응 할 수 있었다. 2) 중국의 세금제도가 과중했기 때문에 화인들이 베트남에 들어와서 장사를 하기가 편했다. 일단 교역 마을이 생기고 나면 남 중국의 해안을 통해서 장사 길이 어렵지 않게 연결 되었다. 이 연결망을 통해서 이동이 용이했다. 3) 중국에서 일어났던 주기적인 정치적 불안이 중국인들로 하여금 베트남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중국 상인들 뿐아니라 관리들까지도 이러한 이주대열에 편승했다. 4) 베트남으로 진군했던 중국군대들이 베트남의 화인 공동체를 키우는 데 일조를 했다. 5) 1802년부터 1945년 사이의 응우웬 왕조에 의해서 도입된 경제정책은 중국상인들과 장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고 이것이 후일 베트남의 수공업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인들이 동남아로 진출하게된  근본적인 이유가 경제적 기회의 포착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기회만 주어지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하였고 그 결과 화인들은 중국의 가족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중국 전체의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송금액수도 대단히 컸다. 이러한 감정의 유지가 화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도 중국인의 정체감을 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근원이 되었다.
베트남의 화인사회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정리가 가능한 종족성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화인들이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발생했던 양광 남부 중심 출신들인 쿨리들을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베트남의 화인사회를 구성해온 것인가 하는 과정은 정치적 또는 경제적으로만 복잡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혈통적으로도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종족성이라는 현상은 연속선상에서 경합하는 무수한 맥락 속에서 어떤 맥락적 가닥들의 어떠한 조합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이 조성하는 분위기에 대처하는가의 문제이다, 따라서 베트남에서 화인의 문제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만 이해하고 풀어나간다는 것은 더욱 본질적인 혈통의 문제에서 경합 가능한 조건들을 사상해버릴 수 있다.
중국인들은 일단 베트남에 정착하게 되면 자신들만의 분리된 집단을 형성하여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유지했다. 화인들은 자신들의 화인사회를 분할해서라도 베트남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베트남인들과 함께 베트남을 위해서 싸웠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서서히 베트남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화인사회의 정체성을 구현해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데올로기나 시민권에 강한 영향을 받았던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화인들은 화인으로서의 정체성 유지에 대단한 노력을 한 것이 입증된다. 사단과 학교 그리고 언론이라는 제도로 나타난 점에서도 본 것처럼, 화인사회는 끊임없는 내부적인 역동성을 창출함에 있어서 힘을 결집시킴으로써 외부로부터의 도전에 대응했다. 외부적으로는 주류인 베트남 사회와 긴밀한 연계를 하면서 화인사회는 독특한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종족성이라는 것은 하나의 연속적인 실재로서 인식되며 끊임없이 구성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가지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베트남 땅에서 살아온 대륙에서 내려오 중국인들이 어느 시점에서 어떠한 계기에 화교에서 화인으로의 정체성 이동현상이 만들어지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화교란 중국의 국적을 갖고 일시적으로 베트남에 살고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며, 화인이란 국적상 베트남인이며 중국계의 혈통을 이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단순한 혈통만의 논의가 아니기 때문에 복잡해지는 것이 종족성의 문제인 것이다. 화인이란 단어의 개념은 상당히 최근에 동남아 전역에서 제기되고 있는 정체성의 문제이지만 베트남에서 그러한 정체성 변화의 조짐은 베트남의 국내적인 역사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싶다.
화교들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중국의 국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반갑지 않은 상황만 전개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서게되는 경우에 그들은 베트남 국적을 가진 생활인으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그 계기는 베트남에 공산화 운동이 전개되고 그 운동에 중국인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발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그러한 정체성 변화의 의미는 더 이상 화교는 상업 중심적인 생활인으로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의 정치적 역동성 속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상업중심의 화교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정치적인 성향의 화인이라는 의식이 과거의 정체성에 보태어짐으로써 변화하는 상황으로부터 우리는 “만들어져 가는” 베트남의 화인 공동체를 생각하게 된다.
화교에서 화인으로 중국인에서 베트남인으로 정체성이 이동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논하고 있는 이 집단은 그들이 속해 있는 주류 사회에 대해서 소수민족이라는 입장을 지속시키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원주소수민족’이 아니라 ‘월경소수민족’으로서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 원주소수민족들은 그들의 정체성이 근원주의에 의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월경소수민족들은 주류 사회의 정치, 경제적 변화에 대해서 항상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죽음과 파괴라는 극단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음을 베트남의 화인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근원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끊임없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상황주의가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현상을 베트남에서 살아가는 화인들로부터 읽어낼 수 있다.

3. 말레이시아- 다종족국가 내에서의 공존과 갈등
말레이시아에서 화인은 소수민족 이라기보다는 말레이와 함께 말레이시아 국민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두 종족집단의 하나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구구성상의 특징은 말레이시아 화인이 문화,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 다른 동남아 국가의 화인과 구별되는 독특한 성격을 갖는 배경이 된다.
먼저, 말레이시아 화인사회가 갖는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말레이시아 화인은 그들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과 정체성을 뚜렷하게 유지하고 있다. 언어 종교 혈연과 같이 종족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지표들의 측면에서 화인은 독자적인 종족집단을 구성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내의 다른 종족집단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종족 경계선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동남아국가의 화인사회와 비교할 때, 말레이시아 화인은 원주민 사회로의 문화적 동화의 수준이 매우 낮으며, 혼혈도 매우 드물게 나타나 종족적 경계는 ‘혈통적 순수성’의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둘째, 화인사회의 집단적 이해를 공식적인 정치영역에 반영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고 있다.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화인 정당을 구성하여 말레이계 정당과 연립정부를 형성함으로써 국가권력을 일정 수준 공유하고 있다. 이는 말레이시아의 정치체제가 국가내의 다양한 종족집단에 기반을 둔 정당들에 의해 운영되는 ‘종족적 정치’의 성격을 갖는 것과 연관된다. 셋째, 말레이시아 화인사회는 상인, 장인, 노동자가 주를 이루었던 계급구조는 관료와 농민간의 계급분화가 중심이 되는 전통적인 중국사회와 이민사회로 형성된 말레이시아 화인사회간에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다른 동남아 국가의 화인사회의 경우도 이와 유사한 계급적 성격을 보이고 있지만 말레이시아 화인사회 내부의 자본주의적 계급분화의 양상은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진 다고 할 수 있다. 넷째, 말레이시아 화인사회는 남중국의 광동성과 복건성 출신의 다양한 방언집단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성을 하고 있다. 이는 다른 동남아 화인사회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특정 방언집단이 화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태국, 베트남. 필리핀과 달리 상대적으로 몇 개의 방언집단의 구성은 말레이시아 화인사회에서 방파사회적인 대립과 연합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했던 배경이 된다.
말레이시아 화인의 정체성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적 요인으로는 화인사회의 내부의 구성, 말레이시아 내에서 다른 종족집단 또는 국가와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이들 상황적 요인이 화인정체성의 변화에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어떤 일반화된 역사 분석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크게 영국 식민시기와 독립 이후의 시기로 구분하여 화인정체성의 기본적인 변화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식민시기의 화인사회는 “일시적 체류자”들로 구성된 이민자 사회의 성격을 뚜렷하게 갖고 있었다. 이는 이들이 말라야에 이주해 온 동기나 중국과 말라야를 왕래하는 화인의 잦은 이동, 말라야 화인사회의 성비의 극심한 불균형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이민자의 일부가 말라야에 정착하는 경향이 나타나긴 하지만 화인 이민자들이 말라야를 자신들의 영구적인 정착지로 간주하는 인식은 취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으로부터의 이민이 거의 중단되고 중국과의 관계도 단절됨에 따랄 말라야 화인사회는 현지에 정착한 사회로 변화했으며, 이들의 정치의식도 불가피하게 현지지향적인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한편 말라야 자체의 상황도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데. 국가권력이 영국 식민정부로부터 말레이에게 이양됨으로써 말레이와 화인간의 종족관계가 변화하였고 국가를 매개로 한 말레이와의 관계가 화인사회의 생존과 변화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독립이후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말레이와 화인이라는 종족정체성이 제도화되고 그 구분이 더욱 경직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종족 집단에 기반 한 정당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종족적 정치와 말레이의 특별한 권리를 인정하는 부미뿌뜨라주의는 종족적 구분의 제도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부미뿌뜨라주의는 원주민과 이민자의 구분에 기초하고 있으며, 화인 대부분이 현지에서 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원주민 집단으로부터 배제시켰다. 독립이후 화인 정체성은 말레이시아의 종족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측면이 강하다. 독자적인 종족집단으로서 화인들의 정체성 유지는 한편으로는 말레이로부터 강요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민족화” 되는 집단이 지배적인 문화에 저항하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말레이와 화인이라는 큰 범주의 종족 분류와 대립이 현실 속에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됨에 따라, 화인사회 내부의 출신지역과 방언 따른 방파적 분화의 양상은 크게 약화되었다. 하지만 화인 통합운동이 실패했듯이 화인사회는 여전히 정치적 ,문화적 지향성과 계급적 차이에 따라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4. 싱가포르- 다수민사회로서의 싱가포르 화인
싱가포르는 영국이 식민전초지로 선택한 한 작은 섬에 다양한 민족이 이주하여 형성한 사회이다. 1960년대 이전까지 싱가포르는 이 지역의 토착민인 말레이와 이민집단, 특히 화인으로 구성된 사회를 영국이 통치하는 독특한 정치구조 하에 놓여 있었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종족집단의 정체성과 지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독립이후 싱가포르는 종족집단을 화인
말레이, 인도인, 유라시아인으로 분류하고 이들의 독자적인 문화적 전통을 국가건설의 요소로 부각시켜 왔다. 또한 종족성의 중립화와 탈 종족적 정치를 강조하면서도 각 종족집단의 고유문화는 보유하도록 종용하여 국가를 마치 법인체제처럼 운영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 화인이 국가 내에서 다수민의 지위를 차지하고 정치적 권력을 주도하고 있다는 측면은 싱가포르 화인이 다른 동남아 지역의 화인사회와는 매우 다른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싱가포르 화인의 정체성은 싱가포르가 중계항이라는 특성상 중국문화의 유입처, 동남아 화인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되어 왔다.
싱가포르 화인사회는 주류집단이면서도 소수집단의 동화를 요구하지 않는 독특한 사회이다. 화인사회 자체가 다양한 출신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고 이러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싱가포르 화인사회는 각 방언집단이 중국이라는 한 종족으로 결속된 집단이라기보다는 19세기부터 상호 경쟁해 온 여러 방언집단으로 분리되어 생활해 왔기 때문에 싱가포르 정부의 종족집단간 통합-분리 정책을 수용하는 데 더욱 용이했을 것이다.
중국과 싱가포르라는 문화의 양면성을 간직한 싱가포르 화인의 이중적 정체성에서 중국적 정체성이 21세기에 새로운 위상을 가지게 될 중국이라는 존재로 다시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지적들도 있다. 중국이 20-30년 안에 거대한 경제력을 확보하리라는 기대와 싱가포르가 이미 중국에 투자한 경제적 참여로 싱가포르 화인들은 중국어와 중국 문화에 대한 지식을 넓혀 가고 있다. 이들은 광동성, 복건성, 상해. 북경을 방문하고 정착하여 세계시장에서 우수 노동력으로 안착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중국으로 다시 돌아간 이들 싱가포르 화인들은 오히려 싱가포르인 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중국 땅에서 강화시키는 현상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5. 필리핀- '방파사회'에서 '국민사회'까지
역사적으로, 일찍 토착사회에 철저하게 동화된 중국계 메스티조는 19세기 후반이후 필리핀의 민족주의와 국민형성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실적으로 아직 토착사회에 완전하게 동화되지 않은 화인사회는 전체 인구의 1% 내지 2%정도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국민경제의 50% 이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필리핀에서 화인사회가 형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은 화인사회의 역사적 역할과 현실적 위상에 대한 이해는 물론 국민통합이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필리핀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의해서도 매우 긴요한 것이다.
화인사회와 토착사회의 상호관계에 관하여 탈식민화 이후의 필리핀을 태국의 ‘융합사회’와 말레이시아의 ‘복합사회’의 중간 유형으로서 전자처럼 완전히 융해되지도 않고 후자처럼 완전히 분해되지도 않는 혼합사회로 파악하는 시각은 필리핀 화인사회의 보편성과 가변성을 부각한다.
스페인의 필리핀에 대한 식민 사업이 개시된 이후 계절풍을 이용한 중국과 멕시코 사이 범선무역의 발전에 따라 그 중계항인 마닐라를 중심으로 화인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화인사회에 대한 경제적, 종교적 이해와 그에 상반되는 중국세력의 팽창에 대한 우려가 교차하는 스페인의 이중성은 상황에 따라 화인사회에 대한 유화적 포섭과 억압적 배제가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화인정책의 이중성으로 표현된다.
필리핀의 식민 시대에 있어서 화인사회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학살과 차별의 역사이며 그에 대한 화인사회의 대응은 토착사회에 대한 동화의 거부로 나타난다. 따라서 탈식민화 이후 필리핀의 효과적인 전략을 바탕으로 화인사회에 대한 포섭정책과 배제정책을 반복하는 지극히 이중적이며 잠정적인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정책이 초래한 역사적 유산이다. 식민시대의 종반 미국시대에 이르러 중화적 민족의식의 확산을 통하여 형성된 중국 귀속적 화교사회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필리핀의 탈식민화와 중국의 공산혁명을 계기로 현지 지향적 ‘화인사회’로 전환되고 1975년 마르꼬스의 귀화조치 이후 점차 현지 귀속적 ‘국민사회’로 이행되고 있다. ‘화인사회’의 ‘국민사회’로의 이행은 필리핀 화인사회의 귀속의식이 토착사회에 대한 갈등과 조화의 양면적 관계 가운데 갈등의 측면이 두드러진 집단적 정체성으로부터 조화의 측면이 두드러져 국민적 정체성으로 변화되고 그에 따라 소외의 자폐의식이 점차 통합의 참여의식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화인사회의 토착사회에 대한 관계가 소외에서 통합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객관적 조건의 변화와 아울러 주관적 의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그러나 필리핀의 경우 경제적 통합고 정치적 귀화 등 객관적 조건의 성숙에 비하면 그 사회적 교류 및 문화적 접변등 주관적 조건은 여전히 미숙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적 결속의 이완과 외부적 경제의 희석에 따라 이른바 국가속의 국가로 비판되는 화인사회의 전통적 폐쇄성은 급속하게 약화되고 있다.

6. 인도네시아- 경제적 지배와 정치적 배제 사이에서
현대 인도네시아의 화인들은 경제적 지배와 정치적 배제란 일견 모순된 의상을 가진 것으로 간단히 특징지어진다. 2억이 넘는 인도네시아 총인구 중 3% 정도에 불과한 화인들은 토착 정치엘리트들에 의해 시민 및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크게 제약 당하면서도 주요 경제부문에서 독점적 위치를 구축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화인들이 지난 30년간 비약적 성장을 경험했지만, 화인들의 위치가 결코 안정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토착사회의 화인들에 대한 반감과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국가 또한 토착사회의 지지를 의식하여 화인문제를 정치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간 국가와 화인부문 간의 관계는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국가는 화인집단에 대해 경제적 특혜와 정치적 안정을 보장했으며 그 대가로 화인들은 국가에 대해 경제발전이라는 성과와 재정적, 정치적 자원을 제공했다. 그러나 화인을 배제시키는 몇몇 장애물들이 여전히 제거되지 않고 있다. 과거 수하르토 정권이 화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내 놓았던 법규들이 여전히 폐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나아가 이러한 전향적인 국가정책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토착사회의 화인에 대한 인식이 변화해야 하겠지만,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축적된 토착인과 화인간의 오랜 불신과 반목이 가까운 시간 안에 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토착인과 화인을 가르는 갈등 요인이 복합적이기 때문에 갈등 해소가 더욱 힘들어 보인다. 토착인들이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이슬람을 신봉하며 농촌과 도시 빈민지역에 거주하는 반면 화인들은 부유하고 기독교를 믿으며 도시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한다. 이렇게 중첩된 갈등요인들은 언제든지 폭력적 충돌로 비화할 여지를 갖고 있다. 소수민족 문제의 해결은 국가의 올바른 정책과 시민사회의 갈등요인 해소가 병행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다면, 인도네시아는 그나마 정치적 민주화와 전향적인 정권의 수립 덕분으로 이제 막 화인문제의 궁극적 해결이라는 먼길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 같다.

Ⅲ. 결론

동남아 화인들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하여 그들이 토착사회와 갖는 갈등의 성격은 화인들의 문화적 불일치와 그들에게 편중된 경제력이라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화인들의 지배적인 경제력은 토착사회 전반의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어 토착 정부의 지속적인 통제와 대상이 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화인들과 토착민의 갈등이 분출되기보다는 계속 잠재되어 왔고 중국이라는 나라가 발전 가능성을 보이면서 급부상하기 시작하자 화인들은 중국과의 접촉이 많아지고 경제적으로 교류하면서 점차 자신들이 중국인도 동남아시아인도 아니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 동남아시아의 화인들이 모습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지만 중국의 발전이 그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대체로 화인들은 현지어도 사용하고 중국어도 사용하기 때문에 초기에 중국에서 동남아로 이주했던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동남아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화인들을 이용하여 교역을 하는 등 많은 긍정적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통해 화인들을 교화하고 동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세계에서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는 흔치 않다. 또한 민족주의 개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점차 무너지고 있는 추세이다. 21세기 다양성을 인정하는 개방화시대에 민족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을 고수하기보다는 이미 수 십 년을 함께 해 온 화인들을 하루 빨리 자국민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동남아가 선택해야 하는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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